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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데, 으스스한 이야기

믿고 싶다

by 고재욱

경상도 외딴섬이 나의 고향이다. 현재는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였다.

이 이야기는 39년 전 일이다.


고향 마을은 산비탈을 끼고 있었는데, 마을의 제일 위쪽 집은 산 중턱에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이었다. 우리 집을 시작으로 아래를 향해 집들이 있었고 스무 집 정도를 지나면 평지가 나왔다. 평평한 곳에는 더 많은 집들이 있었지만 읍내로 가기 위해서는 평지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결국 마을 전체가 높은 지대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내가 살던 집 아래로 세 번째 집에 동네에서 한 명뿐인 고등학생이 있었다. 영식 형이었다. 형은 농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 형은 농사보다는 과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영식 형은 집에서 경작하는 논과 밭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고 동네 꼬맹이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자신이 만든 발명품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꼬마들은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형이 만든 것들은 밑동에서 물을 뿜으며 하늘로 솟구치는 물로켓이라든지, 우산대를 잘라 만든 총 같은 것인데, 이 총에 화약을 넣고 쏠 때면 귀가 멍해질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영식 형은 이 우산대로 만든 총으로 참새를 잡아 꼬맹이들에게 구워주었다. 총의 명중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대부분 참새 한 마리가 다였다.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검게 탄 참새 한 마리에 침을 삼켰는데, 누나가 있던 꼬맹이에게 영식 형은 참새 다리 하나를 먼저 떼어주었다. 그 꼬맹이가 나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꼬마 눈에 형은 에디슨보다 더 멋진 발명가였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어디로 가든지 함께 했다.


어느 날 영식 형은 마을에서 사라졌다. 아이들은 형을 찾으러 다녔다. 형은 집에서도 산과 바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른들에게 물었지만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어른들은 영식 형 얘기가 나오면 혀를 차기만 했다. 꼬맹이들은 형이 만들어준 새총으로 참새 사냥에 나섰지만 빈 손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어느 날 영식 형이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꼬맹이들이 형에게 몰려갔다. 형은 참새 사냥은 못 한다고 했다. 형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머리는 대문 앞에서 목탁을 두들기던 스님 같았다. 백혈병에 걸렸다고 형이 말했다. 병원에서 이제 집에 가라고 했다는 말을 하며 형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꼬마는 백혈병이 무엇인지 몰랐다. 형이 손에 쥔 담배를 내밀었다. 어른 흉내를 내며 담배를 입에 문 꼬맹이는 연거푸 기침을 했다. 영식 형은 진짜 빨 줄은 몰랐다며 담배를 뺐어갔다. 술떡 같이 부푼 형의 얼굴에서 밀가루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형의 두 눈만 빛나고 있었다.


영식 형이 마을에 돌아온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동네 엄마들은 영식 형을 만나지 못하게 꼬맹이들을 단속했다.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구급차가 형의 집 앞에서 불빛을 번쩍이며 서 있었다. 꼬마들은 각자의 엄마 뒤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고 할머니 뒤에 숨은 꼬맹이도 있었다. 두 사람이 앞 뒤에 서서 흰 천에 덮인 들것을 구급차에 실었다. 영식 형의 엄마가 마당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고 있었다. 아줌마는 고라니처럼 울었다. 아줌마 뒤에 영식 형의 동생이 엄마를 안고 울고 있었다. 영식 형이 죽었다.


영식 형은 화장터에서 가루로 변한 후 바다에 뿌려졌다는 소식이 동네에 전해졌다. 어른들의 대화 내용이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꼬맹이였다. 며칠 만에 옆에 있던 사람이 가루로 변해 파도가 된다는 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런 일은 39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 꼬마는 시무룩해졌고 말 수가 줄어갔다.

아침부터 어른들이 수군거렸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영식 형의 엄마가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엄마가 아줌마에게 다녀온 후 한숨을 내쉬었다.

아줌마가 영식 형의 흉내를 내는가 하면 급기야 자신이 영식이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영식 형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아줌마의 마음이 만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자칭 영식 형으로 변한 아주머니는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가 전해준 아주머니가 다닌 장소는 영식 형이 꼬맹이들을 데리고 다녔던 곳, 참새를 잡아서 구워 먹던 개울가였고 토끼 덫을 놓았던 곳이었고 물로켓을 쏘아 올리던 언덕 등이었다. 아줌마가 어떻게 우리가 갔던 장소를 정확하게 방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꼬맹이는 정말 영식 형이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틀이 지나고 아주머니는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다며 한 집 한 집 방문하기 시작했다. 평지에서 시작된 아주머니의 일정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집인 꼬마의 집이 마지막이었다. 엄마 앞에 마주 앉은 영식 형인 지도 모를 아주머니가 영식 형의 말투로 말했다.

ㅡ 그냥 가기 너무 억울해서 이리 왔심다. 걱정하지 마시소. 내 딱 삼일만 있다 갈기라요. 동네 어른들께 인사도 마칬으니 내일이면 충분합니더. 글고 내 쟈한테 한마디 해도 되겠능교?

평소 꼬마가 영식 형과 각별한 사이였음을 알고 있던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가 꼬맹이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꼬마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이 미소를 띠고 있었기에 겨우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다정하게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볍게 포옹을 한 후 꼬맹이의 귀에 대고 아줌마가 속삭였다.

ㅡ 녀석아, 담배는 더 커서 피우는 기다. 알았제.

꼬마는 깜짝 놀라 아줌마를 쳐다봤다. 그 일은 영식 형과 꼬마만 아는 일이었다. 아주머니의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보았던 눈이었다.


아줌마가 영식 형이 된 지 사일 째 되던 날에 아주머니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줌마는 삼일 동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가루로 변한 영식 형을 바다에 뿌린 일이 마지막 기억이라고 했다.

이후로 영식 형은 다시 엄마를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내게도.

그때의 아주머니는 정말 영식 형이었을까.

꼬마는 형이 왔었다고 믿고 싶었다. 그냥 사라지기 너무 억울했던 형의 영혼이 엄마의 육신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안받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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