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는 꼰대가 없다

잊혀가는 이야기가 있다.

by 고재욱

요즘 시골마을에는 노인들이 남아있는데, 그 수는 줄고 있다. 요양원에는 노인들의 수가 늘고 있다. 몇 년 전에 요양원을 찾는 노인들은 치매 말기로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움직일 수 없는 노인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대화가 가능하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노인들이 요양원에 입소한다.

예전에 나는 노인을 떠올리면 꼰대를 생각했다. 노인들은 고집이 세고 외골수에 왕년에를 남발하고 무언가라도 가르치려는 말투에 과거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나는 생각했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동안 수백 명의 노인들과 생활하면서 노인과 꼰대를 같은 단어로 느낀 내 생각은 바뀌었다. 고집이 세고 외골수에 과거 속에 사는 노인들의 모습은 바뀌지 않았는데, 내 생각은 바뀌었다.



1910년 8월 22일(경술국치) 나라를 빼앗긴 땅에서 태어난 그들은, 한쪽은 독립운동으로 한쪽은 친일파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대다수는 침묵으로 삶을 이어갔다. 적군은 우리나라가 아닌 연합군에 항복했고 대한민국은 적군의 선택에 의해서 나라를 되찾았다. 대한민국에는 8월 15일, 나라를 되찾은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 행사가 있고 일본은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로 정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고 있다.

한 노인의 아버지는 일제 징용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했고 노인의 조부는 일본 앞잡이에게 붙들려간 후 고문 끝에 죽었다. 만석지기 재산은 모두 빼앗겼다고 했다.

모두가 가난했기에 개인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던 시절, 나라가 독립이 되었다고 가난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성의 삶이 드러나지 않던 때에, 여성을 괴롭히는 사람은 무지하고 가부장적인 남편보다 오히려 그 고통을 오롯이 통과했던 다른 여성들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입 하나 덜어보고자 열여섯에 홀아비에게 시집간 할머니는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시어머니에게 두들겨 맞다가 엄동설한에 맨 발로 도망쳐서 친정집으로 갔는데 친정아버지에게 죽을 만큼 두들겨 맞고 남편 손에 잡혀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두들겨 맞은 이유는 쌀을 씻을 때 쌀 몇 알을 흘렸다든지, 일하지 않는 남편 대신에 돈을 벌어오지 못했다든지, 남편이 밖에서 데리고 온 사내아기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할머니에게도 막 낳은 딸아이가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사내아이에게 먼저 젖을 물리게 했고 젖이 모자라서 할머니 딸은 쌀뜨물을 끓여 먹였다고 했다.

할머니는 바다색 같은 눈빛을 짓다가 배시시 웃으셨다. 치아가 하나도 없어서인지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할머니들은 얼굴이 다 동글동글 하다.

한 할머니는 소녀들을 잡아가는 일본 순사를 피해 자신의 어린 딸을 큰 항아리에 숨겼다고 했다. 순사와 함께 온 사람은 마을에서 함께 살던 청년이었다. 청년은 붉은 완장을 팔에 차고 있었다. 이미 마을에 살던 소녀 몇 명은 그들의 손에 끌려갔다. 일주일이나 소녀를 찾아 마을을 들락거리던 서슬 퍼런 칼을 찬 사내들이 떠나고 나서 항아리에서 나온 딸과 할머니는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키우던 누런 개가 있었는데, 붉은 완장의 청년이 개가 소녀를 찾아갈 거라고 풀어놓았지만 개는 그 자리에서 꿈적도 안 했다. 할머니는 그날 이후로 보신탕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말 못 하는 개도 알 건 안다는 것이다.

한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인데, 아직도 6월 25일이 되면 불안해하신다. 6월 26일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식사를 시작하신다. 그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

할머니 한분은 남편을 잃고 홀로 다섯 아들을 키웠다. 할머니의 손가락은 전부 휘어져있다. 나무를 해다 팔았는데, 한 단씩 묶느라고 손가락을 혹사시켰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다섯 아들 중 셋이 죽었다. 사고가 났고 병에 걸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걸을 수가 없다. 밤이면 할머니는 작은 방석에 올라 두 팔을 노 삼아 복도를 다니신다. 자신이 과부라 과부 마음을 아는데, 과부 며느리들이 많으니 당신께서 밖에 나가 며느리들 시집을 보내야겠다는 이유다. 그 시간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다른 할머니 한분은 늘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되풀이하신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아버지와의 이야기고 일제 강점기로 시작된 스토리는 전쟁 중간쯤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단편적인 몇 개의 기억이지만 할머니의 논픽션은 꽤 흥미 있고 논리적이다. 할머니는 과거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인지장애를 겪는 노인들은 고집이 세다.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다. 늘 과거 속에서 뒤척거린다. 이상한 건 그럴 때 노인들의 눈빛이 평소와 달라진다는 거다. 주름이 흘러내려 눈을 뜬 건지도 모를 작은 눈에 생기가 도는 건 노인들에게 아직 추억이 남아있을 때인 것 같다. 하지만 이분들을 꼰대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은 누굴 가르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만 할 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요양원에는 노인들이 많은데, 꼰대는 없다.



대문사진. <Pixabay, Free Creative Stu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