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에 밤이 찾아오면, 뒤섞인 기억들은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잠이 들고 요양원은 침묵 속에 잠긴다. 방은 희부옇다. 창문에 부딪히는 수면등 불빛은 방안을 떠돌고 할머니는 복도를 떠돈다.
모두 잠든 시간에 할머니는 대낮처럼 깨어있다. 할머니의 불면은 매일이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에서 자주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 일은 가족이 면회를 왔다가는 날에 발생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할머니의 가족, 아들과 딸이 번갈아가며 면회 왔고 한 달에 두 번이었으니, 할머니의 불면은 매달 두 번 반복되는 것이다.
할머니께서 잠을 잘 수없는 이유는 '요 앞에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를 데려가기 위해'였다.
불면은 치매로 불리는, 인지증 환자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 빈도가 잦을 경우는 의사의 처방에 의한 약으로 조절하기도 하는데, 할머니의 경우에는 약 대신 콩을 드린다. 어마어마한 양의 콩을.(콩 개수를 세어보질 않았다.)
김치 냉장고에 있어야 할 김치통에 콩이 가득 담겼다. 물 빠진 노랑 콩과 검정콩이 섞여 있다. 나는 최대한 힘들어 보이는 표정으로 할머니 앞에 선다.
ㅡ 할머니, 이 콩 좀 나눠주세요. 내일 콩밥 해 먹게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미는 할머니다. 할머니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연세는 구십칠 세다.
영화관 스크린에 집중한 채 팝콘 먹기처럼 두어 개 흘릴 때가 있지만 할머니의 콩 나누기는 정확하고 일단 시작되면 손을 멈추는 법이 없다.
콩 고르기는 잠시 할머니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할머니에게는 진짜 일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할머니가 몇 번 주위를 두리번거리신다. 나는 모른 척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향해 속삭였다. 손 하나를 동글게 만들어 입에 붙이고.
평소에도 아들 이름을 부르던 할머니였는데, 오늘은 내용이 추가된다.
"○○ 아~
여기는 돈도 안 주고 일만 시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럴 수는 없다.
신고해라, ○○ 아~"
아직 할머니의 잠은 소식이 없고 할머니의 독백만 계속된다. 바깥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할머니에게 조금 위로가 될까.
미국, 일본 노동자의 임금 체불 비율은 0.2 ~ 0.6%이고 대한민국은 1.7%다. 체불 임금은 1조 6,472억이다.
(2018 체불 임금 현황,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