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OST STORY2

칠일 후면 백십 세

할머니의 자랑은 계속되었다.

by 고재욱

제가 일하는 요양원에 백구 세 된 할머니가 계십니다. 일쯤 지나면 백십 세가 되시는데요, 누구의 도움 없이 식사를 하고 아침저녁으로 꿀 한 수저를 드시는 루틴을 가지고 계시지요.


할머니는 요양원에 잘 적응하고 계십니다만 두어 가지 불만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좋아하는 과자, 새우깡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인데요, 과자를 자주 드리지 않는 이유는 새우깡이 생기면 식사를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불만에 대해서는 배탈이 나지 않을 정도에서 조절해 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두 번 째는 당신을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입니다. 사실 병원에서도 딱히 해 줄 것이 없다는 입장인데 할머니의 건강이 연세에 비해 꽤 좋기에 굳이 병원에 모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가자고 떼를 쓰는 할머니의 심정을 고려하여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두어 달에 한 번 정도는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편입니다. 오늘이 할머니의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진료 시간은 오후 두 시 예약이었어요. 할머니는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신 후 젖은 수건으로 온몸을 닦고 로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르십니다. 이 문장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랍니다. 할머니는 실제로 머리에 로션을 바르십니다. 할머니 근처만 가도 로션 냄새가 먼저 인사를 합니다. 의외로 그 냄새는 무척 향기롭습니다.


일찌감치 단장을 마친 할머니는 만나는 직원마다 언제 오후 두 시가 될지 물었습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두 시가 되었고 할머니는 병원으로 출발했어요.

한 시간쯤 후에 돌아온 할머니의 얼굴이 환합니다. 작고 동그란 얼굴이 더 동그랗게 말립니다. 헤 벌린 입은 뭔가를 말하고 싶은지 연신 침을 흘리면서도 다물지 않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대화 상대를 찾고 계신 모습입니다. 할머니의 자랑거리가 뭔지 들어드려야겠습니다.

할머니는 당신께서 불리한 상황에서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시고 유리한, 오늘처럼 뭔가 자랑할 일이 있을 때는 귀에 쏙쏙 들리는 말을 하십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아마 잘 들릴 것인데요, 저는 할머니의 독특한 말투 그대로 적었습니다.




내가 오랜만에 병원에 갔네.

의사 선생을 만나는데 의사 선생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네.

내가 의사 선생이 깜짝 놀라는 이유를 물어봤네.

그랬더니 아직도 살아계셔서 깜짝 놀랐다 하네.


할머니는 큰 소리로 웃으셨어요. 아직 할머니의 자랑거리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시작합니다.


돌아오는데 병원에 있는 홍 과장과 복도에서 딱 만났네.

홍 과장이 날 보더니 기뻐하며 줄 게 있다네.

그러고는 꿀, 꿀, 꿀을 꺼내오네.


이 대목에서 할머니의 흘러내린 눈두덩이 속에 숨었던 눈빛이 빛나고 목소리는 높아졌습니다.

할머니께서 자랑하고 싶은 것은 꿀이었네요. 홍 과장님의 선물, 꿀을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셨던 거예요. 꿀은 제 손바닥 정도의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겨있는데 곰돌이 푸우 모양이었습니다. 작은 꿀 한 병에 할머니의 하루는 핑크 빛입니다.


그나저나 어쩌죠. 아침저녁 꿀 한 수저로 하루의 시작과 마감을 하는 할머니의 루틴으로 봐서는 저 작은 꿀병은 금세 동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또 병원에 가자고 떼를 쓰시겠죠. 홍 과장님이 보고 싶어서요. 실은 꿀병이 목적이시겠지만요.


할머니는 또 다른 직원을 붙잡고 자랑을 시작하는 중이십니다. 다행인 건 아직 꿀병은 개봉하지도 않으셨어요. 열어드리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칩니다. 드시기 아까우신 것 같아요. 한동안 작은 꿀병은 열리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할머니의 자랑은 아직도 부족해 보이니요.

올해를 지나 백십 세가 되는 내년에도 할머니께서 저리 환하게 웃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새우깡 한 봉지만 내어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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