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작은 울음이다. 미소를 지으며 태어났다는 아이를 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우리의 시작이 눈물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첫울음이 슬픔에 기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데, 눈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슬프거나 기뻐서 울었고 감격해서, 놀라서, 후회하며 울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 나는 울었고 나의 엄마도 울었는데, 그녀의 눈물은 새롭고 작은 생명과 조우하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혹은 이 작은 아기가 향후 얼마나 자신의 속을 썩일지 예견한 슬픔의 눈물이었든지.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육십 중반부터 백세를 넘긴 노인들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인데 가끔 육십을 갓 넘긴 사람도 있긴 하다. 치매 환자이거나 뇌졸중, 뇌출혈 등 뇌혈관질환의 후유증으로 몸의 일부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몸은 움직임이 아주 느린데 감정 또한 몸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상대편 배우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남극의 빙하가 깨지거나 그 빙하를 타고 온 펭수가 외계어를 날려도 이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개는 감정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치매 노인들이 간혹 울 때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들은 눈물 없이 운다. 하기 싫은 목욕을 해야 할 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다른 노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자신은 참여할 수 없을 때, 한 할머니는 새우깡이 먹고 싶을 때, 치매 노인들은 운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운다. 침대에 누워서 운다. 눈물 없이 운다. 악어처럼 운다.
나는 치매 노인들이 진짜 눈물로 우는 때를 아는데 그건 아들이 찾아올 때였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면회를 자주 오는 사람은 딸이다. 음식과 과일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도 딸이다. 할머니들은 딸을 보고 울지는 않고 아들을 보면 운다. 치매의 진행 정도에 상관없이 아들이 면회 오면 할머니들은 운다.
나의 누나는 우등생이었고 현재도 모범적으로 잘 살고 있다. 엄마에게 정성을 다하는 효녀다. 엄마는 누나를 보면 웃고 나를 보면 운다. 엄마는 아들을 보면 운다. 치매 할머니들은 남존여비 정신을 앞세우던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였을 것인데, 아들을 보면 운다. 딸들은 그런 아들이 미운 눈치지만 자주 면회를 오고 음식을 가져온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자주 눈물을 흘린다. 울리기 위한 영화에는 폭탄이 숨겨져 있다. 관객의 감정선을 터트리기 위해 작은 사건들을 도폭선으로 연결한다. 계획된 지점에 이르면 감독은 뇌관을 작동시킨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김없이 운다.
요양원에서는 치매 노인들을 위한 영화 관람 프로그램이 있다. 주로 춘향전, 벙어리 삼룡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고전 영화가 선택된다.
치매 환자는 현재보다 과거를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인데 치매 노인들은 영화를 보며 울지 않는다. 춘향이가 곤장을 맞아도, 벙어리 삼룡이가 사랑하는 아씨와 불에 타 죽을 때도 노인들은 울지 않는다.
치매 노인들은 영화감독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눈물을 흘린다. 한 할머니는 암행어사로 돌아온 이몽룡이 사또를 벌주는 장면에서 운다. 일본 순사에게 잡혀간 아버지가 생각나서 운다고 한다. 어떤 할머니는 벙어리 삼룡이가 살려달라는 오생원 아들을 모른 척하는 장면에서 운다. 6.25 전쟁에서 포탄에 맞아 죽은 오라버니 생각에 운다고 한다. 치매 노인들은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아니라 기억 때문에 운다.
아들 보고 울고 과거의 기억으로 우는 치매 노인이 후회한다고 말한다. 모진 세월을 죽을 둥 살 둥 고생하며 견뎌낸 후 이제 좀 편해질까 했는데 그만 치매에 걸렸다고. 내 몸도 좀 돌보며 살 걸. 아프기 전에 애들과 맛있는 것 먹고 구경도 자주 다닐 걸.
할머니는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운다.
나는 요양원에서 울음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나는 삶을 자주 본다. 우리는 모두 울면서 삶을 시작한다. 눈물로 태어났다고 해서 죽을 때도 그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웃으며 태어나는 아기는 본 적이 없지만 미소 지으며 죽은 사람은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삶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거친 호흡이 있었고 마지막 숨을 내쉬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이상한 건 그들이 죽고 난 후였다. 그들의 얼굴은 평안했다. 입가엔 미소가 남았다.
남겨진 나는 그들이 살아있을 때를 떠올렸다. 치매 환자로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치매에 걸린 이후에 대부분의 기억은 잃어버렸지만 자신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잃지 않았다. 무료할 것이 분명한 요양원에서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오늘을 붙잡으려 애썼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글을 썼고 어떤 이는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다른 이는 늘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삶의 마침표를 울음으로 찍고 싶지 않다. 울음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나는 삶은 재미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