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OST STORY2

노인들은 아침마다 죽고 싶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by 고재욱

내 왼쪽 손목에는 여러 개의 상처가 있다. 자살 흔적이다.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이십여 년 전쯤의 일이다. 몇 번의 주저한 흔적 위로 십 센티 정도 꿰맨 상처가 선명하다. 그때 나는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었고 무기력 속에 빠져있었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에게서 활기찬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무기력하다. 아침이면 왜 아직도 죽지 않느냐고 물어온다. 그들에게 삶의 목적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는가'라고 노인은 탄식한다. 삶이 형벌로 느껴진다.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이 이어진다.



인지 장애를 앓고 있는 노인들은 식사를 할 때 음식을 흘리는 경우가 많아서 앞치마를 목에 두르고 식사를 하는데, 이때마다 소란스러운 일이 생긴다. 내 앞치마보다 앞에 앉은 이의 앞치마가 더 새 것이니 바꾸어달라는 할머니의 주장이다.

죽고 싶은 마음은 새 앞치마를 이기지 못한다.


소고기 구이가 반찬으로 나온 날이었다. 여기저기서 노인들의 불만이 들려왔다. 서로의 식판을 지적하며 내 고기의 양이 적다고, 왜 저 사람의 고기 양은 더 많냐고 소리 지른다. 죽고 싶은 마음은 소고기를 이기지 못한다.


인지 능력 향상이라는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이 없는 시간에는 노인들이 거실에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이때에도 허공을 향한 삿대질이 시작된다. 보고 싶은 채널은 여러 개고 텔레비전은 한 대뿐이기 때문이다. 죽고 싶은 마음은 막장드라마를 이기지 못한다.


죽고 싶은 마음 뒤에는 삶의 욕구가 숨어 있었다. 삶은 생을 붙잡은 손을 쉬이 놓지 않는다.

죽고 싶다란 노인들의 말은 진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노인들의 일상을 보면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백십 세가 되는 할머니는 백이십 세까지만 살겠다고 한다. 하늘의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분이 그때까지, 아니 백이십 세를 넘어서도 살아계시기를 바란다. 할머니는 '앞으로 십 년도 끄떡없겠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후 행복한 얼굴이다.


나는 할머니 앞에 슬그머니 새 앞치마를 둔다. 소고기를 듬뿍 담고 텔레비전 채널을 7번으로 돌린다.

죽고 싶은 마음을 위로하는 일에는 대단한 행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오늘 아침에는 죽고 싶었지만 앞치마에, 소고기에, 막장드라마에 웃으며 또 하루를 보낸다.

내일 아침이 되면 그들은 또 죽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시라. 나에게는 아직도 열두 개가 넘는 앞치마와 끊임없이 시작하는 막장 드라마가 있으니까.


나는 과거에 죽고 싶었지만 아직 살아있는데, 현재는 살아있으면서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다.


(커버 사진: Free-Photos,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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