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OST STORY2

밤에만 들리는 동요

엄마! 빨리 와

by 고재욱

밤이 되면 들려오는 동요가 있다. 음정도 가사도 알아듣기 힘든 흥얼거림.

소리의 근원지는 얼마 전에 요양원에 입소한 65세의 남자였다. 그는 장애인 시설에 있을 때는 정신지체 2급이었고 요양원으로 옮긴 후에는 장기요양 1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누구라도 보이면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하며 누나~ 누나~라고 불렀다. 잠을 잘 때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려 덮었는데 머리는 이불속을 고수하지만 다리나 엉덩이가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몸 전체를 동그랗게 만들어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그의 모습은 마치 초음파 사진 속의 웅크린 태아를 닮았다. 엄마 뱃속에서 발을 움직이는 태아처럼 그도 이불속에서 가끔 헛발질을 했다.

한쪽 발을 이불 밖으로 내민 그가 중얼거렸다.


- 엄마!

- 빨리 와!

- 나 여기 있어.

- 엄마, **이 여기 있어.


그의 엄마는 장애아인 그를 두고 떠났다. 그의 이력이 적힌 서류에 의하면 그가 다섯 살 때였다. 그는 현재 65세다. 그는 60년 전의 엄마를 기억하며 밤이 되면 그녀를 부른다.

밤 열 시쯤이거나 새벽 한두 시가 되면 그는 이불속에서 발을 꿈틀거리는데, 이불 밖으로 발이 나오면 더 동그랗게 몸을 만들고 이불을 머리 위로 잡아당긴다.

그는 엄마에게 빨리 오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60년 전의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행동을 그의 잠버릇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그에게 가지 않는다.

그는 홀로 엄마를 찾다가 이불속에서 잠이 든다. 그의 지능은 5세 정도라고 했다. 그는 60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의 지능은 5세 수준이고 그는 60년 동안 엄마를 부르고 있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떠나가는 일은 시간이 지난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도 그랬고 나 역시도 그렇다.



내가 다섯 살 때였다. 그런 것 같다. 네 살이거나 여섯 살이었을 수도 있다.

엄마는 처녀의 몸으로 두 아이를 책임지고 있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그녀는 도시 출신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아이 둘을 출산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와 두 아이를 책임지지 않았다. 엄마는 남자의 성을 사용해서 두 아이의 출생신고를 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처녀의 신분으로 두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그녀를 극한으로 치닫게 했을 것이다. 얼마간 보내지던 양육비조차 끊기게 되자 그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남자를 찾아갔다. 그녀는 생활비를 받아보겠다는 으름장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 엄마는 그 일이 두 아이에게 평생 따라다닐 트라우마가 될 줄은 예상 못했다.


우리는 여관방에서 내 아버지라는 남자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엄마는 방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고는 나와 누나에게 말했다.

- 이제 니들 아빠와 살아라.

그게 끝이었다. 그 말을 한 후 엄마는 방에서 나갔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나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쫒아나갔다.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내 귀에서는 엄마의 말이 무한 반복되었다.

- 이제 니들 아빠와 살아라. 이제 니들 아빠와 살아라. 이제 니들 아빠와 살아라.....

내가 내쉬는 거친 숨소리는 다시 내 귀로 들어와서 그 소리에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발을 떼어서 엄마와 누나를 쫒아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걸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나는 눈동자도 움직이지 못하고 엄마가 사라진 방문을 노려본 채 얼어붙어 있었다.


몇 달이 지난 것 같은 시간이었는데, 몇 년의 시간 같았는데, 후일 들은 얘기로는 그 시간이 5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돌아온 엄마를 보고도 입을 다물었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무표정한 얼굴, 거친 숨소리, 팔다리가 뻣뻣하게 굳어버린 기억.

내 모습에 놀란 엄마가 나를 안고 온몸을 주물렀을 때도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삼십 분이 지나서도 나는 목울대로 소리를 넘기지 못하고 꺽꺽거리기만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의 살이 어디라도 내게 닿아야만 잠들 수 있었다. 내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원인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나는 자라면서 각종 틱 증상에 시달렸다. 이유 없이 킁킁 소리를 낸다든지, 글자를 쓸 때 연결부위가 매끄럽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일, 목을 한쪽으로 끝없이 기울였다가 세우는 일이 지속됐다.

누구와 사랑이라도 하게 되면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먼저 이별을 말하는 경우도 반복됐다.

그때의 짧은 시간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된다.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엄마의 상황이었다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40년이 넘은 기억이다. 사실, 장소와 상황은 정확하지 않다. 커가며 엄마나 누나에게 들은 이야기가 기억처럼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아픈 감정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는 충격,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모르는 장소에서 홀로 남겨진 기억, 버려졌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40년이 훌쩍 넘어도.



그는 어땠을까. 5세 정도의 지능을 지닌 그가 다섯 살 때 느꼈을 엄마와의 이별은 내가 다섯 살 때 느꼈던 이별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60년 간 부르는, 그가 기억하는 다정한 엄마의 얼굴과 내가 40년 간 잊고자 했던, 나를 떠나가던 무서웠던 엄마의 얼굴이 같은 것임을 나는 안다.


그의 목소리가 유독 애절하게 들리는 것은,

내가 그의 엄마의 얼굴을 예전에 보았기 때문이다.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던 그의 눈동자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나는 퇴근할 때면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 오기만 하면 돼.


나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제는 안다.



(커버 사진 : crkmaga,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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