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OST STORY2

나무 가족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

by 고재욱

아이는 예닐곱 살이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나면 아이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작은 지게를 메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아침 기침은 산으로 간다는 알람 소리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산행을 너무나 좋아했다.


첫 닭이 막 울었고 멀리 보이는 산 능선에 빛이 어슴푸레 비치기 시작할 때였다.

큰 지게를 어깨에 둘러멘 할아버지 뒤로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땅에 끌릴 것만 같은 작은 지게를 진 아이와 배가 땅에 닿을 것 같은 강아지 한 마리가 길을 나섰다.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는 대문 입구에 묶인 개들이 그들을 보고 짖었는데 아직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잘려나간 벼 밑동이 바둑판처럼 선을 만들었고 주먹 만 한 새들이 투망 펼쳐지듯 허공을 쥐락펴락하며 산으로 날아갔다. 논 사이로 난 길을 걸어서 그들은 새들을 따라 산으로 향했다.


완만한 경사로 산허리를 감싼 길을 걷는 동안 작은 아이와 더 작은 강아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껑충거렸는데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이 끊이지 않고 아이를 뒤따랐다.

산 중턱에 다다르자 할아버지는 길에서 벗어났다. 그곳은 나무 그림자가 짙었고 아이 몸통보다 굵은 나무들이 빼곡했다.


할아버지는 작은 아이 머리통 만 한 먹색 도끼를 꺼내 들었다. 쇠 부분의 아래쪽은 상어 이빨처럼 은색 빛이 돌았다. 무거워 보이는 도끼머리는 나무 막대기로 꿰여 있었다. 손잡이로 쓰는 나무 막대기는 일자로 쭉 뻗어있지 않고 동네 처녀들 허리처럼 약간 휘어져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손잡이를 벽조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간 튼튼한 게 아니라고 자랑했다. 벽조목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말한다.


할아버지는 도끼를 어깨에 메고 숲을 한 바퀴 돌아봤다. 그러고는 우듬지가 부러지고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다른 나무에 기대고 서있는 큰 나무 앞에 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드디어 할아버지의 날 선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나무를 향해 내리 찍힐 것을 기대했는데 할아버지는 그저 나무 앞에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행동을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을 살며 우리에게 맑은 공기를 주고 새들의 집이 되었던 나무가 이제 죽어서는 그 몸으로 땔감이 되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큰 나무가 죽은 후 슬퍼할 나무 가족에게는 미안해서 그리한다고 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할아버지의 도끼가 나무를 내려칠 때마다 숲 전체가 흔들리며 큰 소리가 났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도끼가 나무에 박힐 때는 멀리 떨어진 나무들도 함께 흔들렸다. 아이는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나무들의 슬픔을 생각했는데 그 슬픔은 눈물이 없는 울음이었다.

아이는 땅바닥을 뒹구는 나무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서 지게에 차곡차곡 쌓았다. 아이는 속살을 드러낸 나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지게 가득하게 나무를 쌓았다. 지게 뒤쪽으로 튀어나온 가지(짐을 떠받치는 나무)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게 꼬리가(지게에 짐을 싣고 잡아매는 줄) 짧아서 마른 칡넝쿨을 연결해야 했다. 뒤에서 보면 할아버지의 다리와 한 번씩 옆으로 흔들리는 지게 작대기만 보였다.


앞서가던 할아버지의 걸음이 볏가리 삐죽한 초가집 앞에 멈추었다. 할아버지는 초가집 한쪽에 지게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무의 절반 가까이를 반쯤 기울어진 구멍 뚫린 나무 문 앞에 내려놓았다. 안쪽으로 아궁이가 보였다. 혼자 살고 있는 동네 할머니의 부엌이었다.


아이는 힘들게 구한 나무를 왜 내려놓느냐고 물었다.

나무가 서로를 기대어 바람을 버티고 해를 피하는 그늘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도 이웃끼리 서로 기대고 사는 것이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이는 자신의 지게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고는 작은 나뭇가지와 마른 솔잎이 담긴 노란 포대를 할아버지의 나무 옆에 내려놓았다.

푸른 나무 향이 아이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은 필수, 건강은 기본, 행운은 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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