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버리다
내년 복학을 앞둔 나는 [독서실 -> 헬스장 -> 집] 이란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어제가 오늘 인지도 헷갈려하며 살고 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술 한잔 마시고 헤어지는 게 전부였기에 지루한 삶의 오아시스가 되어주진 못했다. 게다가 안 그래도 공부의 연속인 대학생의 삶에서 코로나 까지 겹치는 바람에 그나마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던 동아리, 모임 등등 까지도 모조리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정말 재미없고 밋밋한 무채색 삶을 달리고 있던 와중에, 그래도 글을 좋아했던 나를 돌아보면서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지만 쓸 수 있는 글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멍하니 푸른색 빛 만을 쏘아대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쓸 글이 없었나..."라고 나지막하게 말했었다. 물론 상상력에 큰 기반을 둔 짧은 소설 같은 건 어찌어찌 한 편 정도 쓰긴 했지만, 브런치에서 일상을 쓰자니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남들은 어떤 글을 쓰나 궁금해하며 브런치를 유랑하던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더 이상 나는 나의 일상을 가지곤 글을 쓰지 못하게 구나." 어쩌면 이미 나의 일상은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경쟁력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지루하고 식상한 대학생의 삶.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뿐더러, 굳이 봐야 할 이유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21년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내년을 향한 설렘 등등이 있었기에, 그 관심사에 편승해서 몇 가지 글을 쓰긴 했지만 이제 새해가 밝아버렸고 아무런 이벤트도 없는 지금, 나란 사람은 꽤나 시시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지루한 삶에서 쓸 수 있는 글이 있을까? " 한 시간 동안 멍하니 노트북 앞에서 갈피를 못 잡는 자신에게 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해결책은 꽤나 간단했다. [지루한 삶]과 [쓸 수 있는 글]을 따로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누군가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자신의 글에 자신의 경험을 넣곤 한다. 특히 브런치처럼 에세이가 주력인 곳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많은 경험을 토대로 수많은 곳에서 영감을 얻고 재미난 글들을 많이 써내곤 한다. 하지만 나, 혹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올 경험이 많이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흘러 나온 경험들이 가치가 있을까? (가치의 판단은 자신이 아닌 나의 글을 보는 타인이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아무리 자신의 글이라도 어느 정도 가치가 보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삶이 현재 가지고 있는 "흥미로움의 경쟁력" 은 이미 상실된 거나 다름없다.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당연히 '내가 쓰는 글에서 나의 삶을 배척' 하는 것이다. 굳이 우리의 삶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쓸 수 있는 글은 무궁무진하다. 소설을 써서 곳곳에 투고를 하여도 되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도 된다. 꼭 브런치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일상이 담긴 에세이가 아니더라도 '글'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은 분명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1월부터 조금씩 소설을 써보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던 나는, 자연스레 브런치와 멀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브런치에서 알람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정말
오랫동안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지루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보단, 애초에 지루한 삶은 내버려 두고 특별한 상상을 하는 것이 더 재밌는 글이 탄생할 것만 같다. 우리의 일상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지만, 우리의 상상은 살짝만 비틀어주어도 때론 터무니없이, 때론 예상치 못하게 흥미롭게 우리를 흔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도둑고양이의 시점으로 짧은 소설을 한편 써봐야겠다고 또 한 번 머리 위에 말풍선을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