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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Mar 23. 2022

할아버지도 돌아가시는구나

알 수 없는 쓸쓸함

그렇게 죽는걸 두려워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 더 이상 울산 동구에는 아무런 온기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서부 패밀리 아파트’라는 정류장에서 내릴 일도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입관실에서 본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꽤나 답답해 보였다. 할아버지의 입과 코에는 하얀 석고 뭉치 같은 것이 들어가 있었고, 고개는 살짝 뒤로 젖혀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밑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내가 깊어져 가는 답답함 속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장의사는 마지막 망자의 모습인 만큼, 한 번씩 만져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했다. 할아버지의 발목 부근에 서있던 나는 살며시 할아버지의 발목에 손을 얹어보았다. 아주 차가웠고 속은 비어버린 듯했으며, 한 겨울에 눈 덮인 대나무를 만지는 것만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불쾌하고 무서운 촉감으로 인해서 나는 얼떨결에 손을 황급히 떼고 말았다.



미련한 나의 손은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기에, 떠나버린 망자의 옷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하얀 수의를 멍하니 바라보며 실감 나지 않는 어설픈 침묵을 이어나갔다. 장의사는 어느 정도 눈치를 살피더니, 주저리주저리 망자를 기리는 말을 뱉고 할아버지를 천 같은 걸로 둘둘 묶기 시작했다. 왼팔과 오른팔을 통해서 상체를 묶고 왼 손목과 오른 손목을 통해서 중앙을 묶고 마지막으로 왼 종아리와 오른 종아리를 통해서 하체를 묶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미 죽어서 바닥에 떨어진 대나무가 힘없이 굴러다니듯, 공허하게 이리저리 장의사의 손에 휘둘렸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흰 천으로 덮어줌으로써, 망자를 기억하는 추모 의식은 끝나게 되었다.





다시 장례식장 안으로 돌아와서, 나는 조문객을 기다렸다. 그런데 자꾸만,  전에 할아버지의 종아리를 만졌던 나의 손에서 찝찝한 끈적함이 느껴졌다. 나는 혹여나 조문객이 올까 , 섣불리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신발장  탁자에 놓여있는  소독제를 손에 뿌렸다. 하지만 달라지는  없었다. 분명  끈적함이, 기분  이란  누구보다도  아는 나였지만 그때는  기분 탓을 도저히 ‘기분 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찝찝함이 아니었다. 나는 눈치를 살피며 장례식장 밖에 있는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찡그리며 세면대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관실에서 나던 냄새와 동일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새콤달콤한 인조 레몬향. 나는  냄새를 죽을 때까지 거부하리란 생각이 손을 씻는  짧은 생각 동안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모든 가족이 다 같이 있는 이 장례식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할지 난감해했다. 아빠의 아빠로서 봐야 할지, 엄마의 시아버지로 봐야 할지 아니면 나의 할아버지로 봐야 할지... 결국 나는 그 어떠한 모습도 정하지 못했고, 그저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할아버지가 소중한 이였다는 의미를 딱딱하고 사무적이게 전할 뿐이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 할아버지는 나에게는 한 없이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엄마와 아빠에겐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푸대접을 받은 부모의 자식인 나는 섣불리 할아버지를 향한 서글픈 감정을 꺼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따금씩 엄마에게 이런 말을 꺼내면, 엄마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할아버지로’ 생각하라고 했다. 물론 그 말이 진심이 든 아니 든, 엄마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애초에 그 말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씁쓸하게도 무난한 망자 에게는 연민의 감정을 품는 것이 세상의 암묵적 약속이기도 했고 말이다.





할아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울산 동구에는 비가 한 방울씩 툭 툭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망자가 야속하게 생각하겠지만, 조만간 하늘을 덮은 이 어두운 구름들은 햇빛에 뚫릴 것이고 새싹과 산뜻함이 만개하는 봄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상심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 내가 장례식장에서 술김에 눈물을 흘려주었고, 납골당으로 가는 날에도 알맞게 얇은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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