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도, 멈추지 않으면

엄마의 미완성 참회록

by Jade

영어 캠프가 시작되고 5일이 지났다.

매일 두 시간씩 아들과 영어 수업을 하는 원어민 선생님으로부터 통지표가 도착했다. 한 페이지에 커다란 글씨로 강점과 좀 더 보완이 필요한 점이 서술되어 있었다. 강점은 수업 시간에 항상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상당히 많은 명사를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면 발음에 자신감이 없고 아직 일부 알파벳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냉정하게 짚었다.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담담하게 평가표를 읽어나갔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의 평가표를 보게 된 순간 발생했다. 멀리서 봐도 다른 아이들의 종이는 앞뒤로 빼곡하게 문장이 적혀 있었다. 찰나의 순간,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저 아이는 얼마나 잘하길래 저렇게 써줄 말이 많을까? 우리 아이 선생님이 무심한 걸까, 아니면 내 아이가 써줄 말이 없을 만큼 기초적인 수준인 걸까?’

한번 비교하는 마음이 싹트자, 불안과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 아이에 대한 믿음을 칭칭 휘감았다. 다른 아이와 내 아이의 능력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상황이 처음이라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우리 반에서 나 공부 좀 해.”라고 말하던 아이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허세 섞인 귀여움으로 치부하며 대견해하던 여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은연중에 아이를 떠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말은 다 알아들어? 듣기만 하는 거 아냐?”

어쩌면 아이는 직감적으로 그 질문 속에 숨겨진 나의 불신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감각이 쌓이고 쌓여 결국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깎아먹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불안은 이틀 뒤, 반캉왓(Baan Kang Wat)의 한 공방에서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아이가 페인팅 체험을 마친 후 손을 씻고 싶어 하길래, 나는 이때다 싶어 어제 연습한 ‘I want to…’ 패턴을 써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아이가 수줍어하며 대신 해달라고 떼를 쓰자,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급기야 아이는 손을 안 씻겠다며 버텼고, 나는 끝내 아이를 몰아붙였다.

“그럼 네가 알아서 해. 엄마는 아무것도 안 도와줄 거야!”

아이는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부아가 치민 나는 며칠 전의 평가표를 떠올리며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엄마 아빠는 너 캠프 와서 바라는 건 자신 있게 말하는 거 딱 하나야!”

“처음 보는 사람이라 낯설어서 그래…”

“너 선생님이랑 수업할 때도 이러는 거 아냐? 말 한마디 못 하고!”

“아니야! 수업 때는 나 진짜 열심히 한다고!”


아들은 그 어떤 말을 들었을 때보다 상처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결국 싸늘한 침묵 속에 짐을 챙겨 그곳을 나왔다. 아기자기한 공방도 분위기 있는 카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좁고 숨 막히는 골목을 벗어나 탁 트인 광장이 나타났을 때야 비로소 머릿속에 신선한 공기가 도는 듯했다. 나는 홀린 듯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화덕 피자집에 자리를 잡았다. 피자가 나오자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재잘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아까 그 말은 나한테 정말 상처였어.”

“뭐가?”

“수업 시간에 열심히 안 한다고 한 거. 나 수업 때 나름 말 많이 하거든. 선생님은 매일 보니까 괜찮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쑥스럽단 말이야.”


놀라웠다. 아이는 내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자신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부모의 기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그 모든 분투가 엄마에게 부정당했다는 사실에 아이는 그토록 서글프게 울었던 것이다. 미안함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알았어. 엄마가 의심해서 미안해. 네가 열심히 하는 거, 엄마가 믿어줄게.”


사과 한마디에 비통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피자에 열중하는 아이를 보며 ‘초심’을 떠올렸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

영어 캠프에 올 돈으로 한국에서 학원을 보냈더라면 훨씬 빠르게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더 늦으면 대형 학원에 들어갈 반이 없어진다며 하루라도 빨리 레벨 테스트를 보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나는 “여행 가려고 돈 아낀다”고 둘러대며 당당하게 마이웨이를 택하지 않았던가.

대신 매일 아이와 영어 교재 한 장, 영어책 한 권으로 영어 학습을 해왔다. 엄마표 영어라고 어디에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지만,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해왔다. 이제 막 시작한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처럼 천천히 가더라도 끝까지 달려서 컷오프 안에만 들어가자는 목표로.


‘Sin prisa, sin pausa(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고).’

20대 시절 내가 늘 가슴에 품었던 문장이다. 내 속에서 나온 아이도 나를 닮아 근성 하나는 끝내주었던 것이다. 영어가 재미없다, 힘들다 툴툴대면서도 정해진 분량을 꾸준히 해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어 학습을 지속해 나가기에 부족했다. 아이에게 영어가 단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힘든 공부가 아니라, 생생한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걸 깨닫기를 바랐다. 10년 뒤 AGI의 등장으로 수능 영어 시험은 사라질지 몰라도, 직접 언어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즐거움은 여전히 남아 있을 테니까.


결국 우리가 떠나온 목적은 ‘영어 공부의 완성’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동기 부여’였다. 그리고 다행히 아이는 매일매일 즐겁게 영어를 배우고 있다. 원어민 선생님과 하는 영어 수업이 한자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지난 1년을 한자 덕후로 살아온 아들에게는 엄청난 변화다.

내년에도 캠프에 참여하고 싶다며 능동적으로 복습을 한다. 심지어 주말에 엄마와 하는 파닉스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던 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헛된 비교에 눈이 멀어 방향키만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목표한 지점에 평온하게 닻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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