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40분의 풍경
게으르지만 재빠른 엄마, 부지런하지만 느린 아빠, 게으른 데다 느리기까지 한 아들.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기막힌 조합이다.
남편은 연애할 때도 가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있었다. 서울이니까, 버스가 늦게 올 수도 있는 거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신혼여행 첫날, 남편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대중교통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
우린 9시에 나갈 예정이었다. 남편이 먼저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침대라는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뭉기적대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을 때 벌떡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머리 감기, 화장하기, 옷 입기. 이 모든 것이 20분 안에 이루어졌다. 8시 50분, 나는 나갈 준비를 끝내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 이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완벽했다. 하지만 나는 30분이 지나도 그 문을 열지 못한 채, 팔짱을 끼고 남편을 못마땅한 듯 쳐다봐야 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난 남편은 모든 동작이 너무 느렸다. 내가 준비를 다 끝내고 서 있을 때도 남편은 머리를 만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가 2/4박자 행진곡에 맞춰 앞을 향해 나아가는 군인이라면, 남편은 3/4박자 왈츠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추는 무용수 같았다. 이 간극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 그저 가족 행사처럼 공동의 목표에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서로 묵인해준다. 남편이 회사에 지각할 때마다 저러다 잘리는 거 아닌가 걱정되긴 하지만, 잘리더라도 어디 가서든 생활비는 벌어올 사람이니 하려던 말을 주워삼킨다. 무엇보다 이미 40년 가까이 자기만의 세계를 공고히 쌓아온 사람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아들은 다르다.
이 녀석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길러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있다. ‘제대로 된 인간’에 대한 견해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돌보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게 나의 바람이다. 남편이 느려터진 건 답답해도 못 본 척할 수 있지만, 아들이 느릿느릿 세월아 내월아 하고 있으면 속이 터져서 꼭 잔소리가 나온다. 저걸 꼭 고쳐야 한다는 특명이 내게 내려진 것처럼.
특히 등교 시간은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지각이라는 참사를 앞두고 나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는 경보음이 된다.
“세수했어? 로션은? 빨리 하라니까.”
“칫솔만 계속 물고 다니지 말고 닦으라고. 그걸 왜 만지고 있어.”
“아직도 옷을 안 입고 있으면 어떡해.”
“이제 10분 남았잖아. 지각하면 어쩔려고.”
처음에는 엄마의 잔소리 폭격에 주눅 들어 순순히 따르던 아들도 점점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하고 있잖아! 그만 좀 말해!”
“뭐라고? 네가 제대로 빨리빨리 하면 되잖아. 그럼 엄마가 뭐라고 해?”
아이 얼굴이 잔뜩 독이 오른 개구리처럼 부풀어 오르며 눈물이 줄줄 흐른다.
파국이다. 지각을 피하려다 결국,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아들이 등교하고 나면, 후회와 의구심이 하루 종일 재처럼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분명 아이가 스스로 등교 준비를 해서 제시간에 학교에 가는 게 목표인데, 지금 이게 맞는 걸까. 허둥지둥 엄마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원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혼이 나서 움찔하는 모습도.
하지만 아이가 하는 걸 보고 있으면 도무지 잔소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왈츠는 쉴 새 없이 움직이기라도 하지, 아들은 슬로모션을 재생한 것만 같았다. 보고 있자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그 기포를 터뜨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보이는 것이 문제라면, 차라리 눈을 가리자.
외출을 해야 할 때 아들에게 준비 시간으로 25분을 주기로 했다. 내가 제시한 건 20분이었지만, 언제나 협상하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30분을 불러서 25분으로 타협했다. 그 시간 동안 세수, 양치, 로션 바르기, 옷 입기, 벗은 옷 빨래 바구니에 넣기, 가방 준비까지 모두 끝내면 칭찬 스티커 5개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규칙이 하나 더 추가됐다. 아이가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을 것. 보이면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안 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아들이 물개 박수를 치며 동의했다.
단순한 규칙 하나를 추가했을 뿐인데, 그 효과는 엄청났다. 끊이지 않던 잔소리 대신,
“이제 타이머 맞춘다.”
한 마디면 모든 게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스스로 시야를 차단했더니 덜 불안해졌다. 아이가 양치를 대충 하건, 로션을 터무니없이 조금 바르건, 옷을 이상한 조합으로 입건 간에, 어쨌든 아이는 정확히 8시 40분에 매일 집을 나섰다.
중요한 건, 그 시간에 집을 나서기 위해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속도에 맞춰 모든 동작을 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매일 따뜻하게 아이를 안아주며 배웅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심지어 내 유전자를 50%나 가진 아이어도 삶의 속도와 박자는 다를 수 있다.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만으로는 함께 춤을 출 수 없다. 매일 아침 8시 40분,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