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안아줘.”
시도때도 없이, 별다른 맥락도 없이 안아달라며 와락 달려든다. 밥을 먹다 말고 내 무릎 위에 올라앉아 안아달라 하고, 양치를 하다 칫솔을 입에 문 채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온다. 옷을 갈아입다 팬티 바람으로 안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아빠가 출근할 때 배웅을 하면서도 스크류바처럼 나에게 찰싹 엉겨 붙어 있다.
아빠는 자기를 안아줘야지 왜 엄마만 찾느냐며 서운한 투로 집을 나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번 집 밖으로 나가면 엄마를 거의 찾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도 전화 한 통 없고, 하고 싶은 게 많아 일주일 내내 방과 후 수업으로 바쁘다. 오후에 잠깐, 30~40분 집에 들렀다가 다시 나가 미술을 배우고, 수영을 하고, 축구를 한다. 저녁 여섯 시가 훌쩍 넘어야 집에 돌아온다.
밥을 먹고 나서도 TV를 보느라, 좋아죽는 한자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내가 거실에서 수학 연산 문제집이나 영어 문제집을 풀라고 불러야 그제야 얼굴을 내민다. 아침에는 그렇게 엄마 껌딱지 같더니, 낮에는 제법 다 큰 아들처럼 군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면 다시 어리광쟁이가 된다.
찰싹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덥다며 반대쪽으로 한 바퀴 굴러갔다가도, 자석처럼 다시 돌아와 안아달라고 한다.
“엄마, 나를 사랑하는 만큼 꼭 안아봐.”
있는 힘껏 끌어안았더니 이런다.
“뭐야, 나를 이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는 거야?”
조그만 녀석이 이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걸까. 아무래도 시골에 내려갔을 때 할머니 옆에서 일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듯하다. 태양을 삼킨 여자였던가.
“뭐야, 너 지금 엄마의 바다 같은 사랑을 의심하는 거야?”
드라마를 꽤 본 아줌마의 순발력으로 받아친다.
몇 번을 안아달라 했다가, 덥다며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잠이 든다.
안아주는 일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들이 안아달라고 할 때면 앞에서도, 뒤에서도, 아낌없이 안아준다.
그런데도 가끔 그 달콤한 말이 파국으로 끝날 때가 있다. 너무 피곤한 날에는 이제 그만 말하고 잠이나 자라며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온다. 아침에 안아달라며 따라다니다가 지각이라도 할 것 같으면, 준비는 안 하고 뭐 했냐며 불호령을 내리고 아이를 서둘러 내보낸다.
그렇게 안아주는 게 힘든 일도 아닌데, 어떤 날은 결국 아이를 울린 채 보내고 만다.
그런데도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아이는 다시 이 세상에서 엄마 품이 가장 따뜻하고 그립다는 얼굴로 와락 안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아이의 우주, 단 하나뿐인 세계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해진다.
지금 이 순간, 내 품에서 느끼는 온기와 사랑으로 아이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흥미롭고 멋진 것들로 가득하지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그래서 늘 서늘한 긴장을 품어야 하는 세계로. 그 세계에 자신을 내던지기 위해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끝없이 솟아나는 온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샘 하나를 품고 있어야, 상처받고 넘어지는 날이 와도 금세 무릎을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이가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하면, 나는 더 크게 팔을 벌려 꽉 껴안는다.
영원한 건 없다. 이 황홀한 순간도 언젠가는 끝나버릴 것이다. 아이가 훌쩍 커서 더 이상 안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날을 떠올리기도 하고, 내가 병들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는 무서운 상상을 하며 고개를 세차게 내젓기도 한다. 결국 말과 몸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이렇게 가까이 있고, 손만 뻗으면 언제든 닿을 수 있는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