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좀 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by Jade

아이가 갑자기 로블록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건데 재밌다며,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를 신나게 들려주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들은 로블록스를 얼마나 하는 걸까.


“너네 반 친구들 중에 로블록스 하는 애들 많아?”

“많지. 이OO, 최OO, 오OO, 홍OO, 그리고…”


아이는 자기랑 친한 남자아이들 이름을 줄줄이 댔다.

아직까지 한 번도 로블록스를 하고 싶다고 조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진짜 많이 하네. 그런데도 의젓하게 게임하게 해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대단한데?”


아무 대답이 없길래 한 번 더 찔러봤다.


“어차피 말해도 엄마 아빠가 안 시켜줄 것 같아서 말 안 한 거야?”

“어. 엄마 아빠가 안 들어줄 것 같아서.”

“그렇긴 하지. 그래도 엄마 아빠가 앞으로 때 되면 조금씩 게임을 허용해 줄 거라는 건 알잖아. 그치?”

“알아.”

“일단 내년에 게임기를 하나 사서 엄마 아빠랑 같이 해보고, 온라인 게임은 그다음에 차근차근 하자. 엄마는 원래 게임 안 좋아했는데, 같이 하다 보면 엄마도 게임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또 궁금해졌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게임에 대해 초연한 건, 단순히 엄마 아빠가 제시한 ‘게임 허용 로드맵’을 받아들이고 있어서일까?


“엄마 궁금한 게 있는데, 넌 게임이 좋아, 아니면 엄마랑 놀러 다니는 게 좋아?”

“엄마랑 놀러 다니는 게 좋지.”

“설령 엄마랑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는 거라도?”

“엄마는 내가 미술관, 박물관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아니~ 좋아하지. 엄마 닮아서. 그치?”

“응. 난 미술관, 박물관 재밌는데.”


마지막 말에는 아들 특유의 허세가 살짝 묻어 있었다. 웃음이 났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자고 하면 좋다고 따라나서는 건 사실이지만, 금세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엄마랑 놀러 다니는 게 좋다”는 말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사실 그날 아침, 아이가 작은 잘못을 하나 했다.

잘못한 녀석의 태도가 불손하기 그지없어서, 등교하려는 아이를 붙잡아 앉히고 눈물 쏙 빠지게 불호령을 내렸었다. 그때부터 마음 한켠에 얹혀 있던 감정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들은 화장실로 들어가려다 말고 멈춰 서서 다시 말했다.


“로블록스에 이탈리안 브레인롯도 있어. 돈 많으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고, 돈 없으면 못 탄대….”

“아들, 일단 볼일 먼저 보고 나와서 얘기할래?”


시원한 표정으로 나온 아들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이탈리안 브레인롯 게임에 훔치기 기능도 있다던데?”

“나도 알아.”

“그런 거 하면 꼬맹이들이 현실에서도 훔쳐도 된다고 생각하면 어떡해?”


아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 누가 그런 걸 헷갈려. 게임은 게임이지. 훔치면 안 된다는 건 다 배우는데.”

“너는 초1 형아니까 알아도, 더 어린 유치원 동생들은 헷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

“유치원 때도 다 배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눈빛을 남기고 아이는 TV 앞으로 사라졌다.


나처럼 게임을 즐겨하지 않았던 엄마들에게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다.

게임을 하면 하나같이 중독에 빠질 것 같고, 내 귀중한 아이를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는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아이, 혹은 하루 종일 무기력한 아이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콘솔 게임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덜하다.

콘솔 게임을 했다고 해서 내 아들이 망가질 거라는 비약적인 사고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직접 경험해 봤고, 알고 있는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콘텐츠와 접촉 대상을 내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안도감이 크다.


그래서 남편에게 콘솔 게임기를 하나 들이자고 말한 것도 바로 나였다.

아직도 대학 동기들만 만나면 위닝을 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초등학교 때 오락실을 졸업한 이후 게임에 손도 대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안전하게’ 게임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게임을 평생 못 하게 막을 수도 없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게임 무지렁이인 나에게까지 큰 감명을 주는 페이커라는 위대한 인물도 있지 않은가.


콘솔 게임을 함께 하다 보면, 게임에 대해 내가 쳐 놓은 장벽도 조금씩 무너질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과 함께 온라인 게임을 시작하고 싶다. 자극적이지 않고 폭력성이 낮은 게임을 하면서, 룰뿐만 아니라 에티켓도 배우고, 게임 시간과 허용 가능한 범위에 대해서도 계속 대화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게임을 알아야 아들과 협상이 가능할 테니, 나도 게임에 정을 좀 붙여 볼 생각이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과정이다.

마흔이 넘어 게임 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막상 해 보면 내가 더 홀딱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게임 좀 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도, 꽤 근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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