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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Aug 16. 2024

종이접기


다섯 살 때인가

처음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네모아저씨’ 책을 시작으로 점차 종이접기 세계에

빠져들었다.

종이 접기의 장점은 너무나도 많다.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니 소근육 발달에도 좋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종이를 접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로 보아

창의성에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

외출하거나 여행 갈 때도 가방에 색종이, 가위, 풀, 패드만 챙기면 되니 간편하다.

무엇보다 저렴해서 좋다.

1~2만 원이면 실컷 색종이를 쓸 수 있고

가끔 전문가용 색종이를 사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마저도 레고나 합체변신 로봇에 비하면

혜자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엄마인 나는 종이 접기가 지긋지긋했다.

제발 종이접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난 2년 동안 아이와 종이접기를 하며 수없이 싸웠다.

항상 아이가 접어달라고 하는 어려운 종이 접기가 문제였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면 스멀스멀 화가 치밀었다.

결국 이 어려운 걸 하게 만든 아이에게 분노가 폭발했다.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는, 안 그래도 바쁜데

자꾸 엄마가 접어달라고 하면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다. 엄마가 접는 건 예쁜데, 자기가 접는 건 꾸깃꾸깃해서 맘에 안 드니까 자꾸 엄마한테 부탁하는 것이었다.

손을 덜가게 하게 위해

일단 선을 똑바로 내는 것부터 가르쳤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이가 눈물을 몇 번 쏟기도 했지만

확실히 종이접기 실력이 한 차례 업그레이드 됐다.

그리고 한 가지를 안 보고 접을 수 있을 때까지

연습시켰다. 미션에 성공해야만 다른 걸로 넘어갈 수 있었다. 아이가 지겨워해서 오래 지속하진 않았지만

그 때 연습하던 미니카는 아직도 뚝딱 뚝딱 잘 접고,

미니카 종류는 금방 따라하게 되었다.

아이가 잘 따라올수록

점차 종이접기 규칙이 늘어났다.

제일 중요한 엄마의 분노 조절을 위해,

엄마가 접어주는 종이접기 채널을 네 개로 한정시켰다. 설명을 잘하고 대부분 쉽거나 해볼 만한 수준의 영상을 올리는 채널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접어줄 때

아이도 함께 접도록 했다. 엄마가 접은 걸 자기가 갖고 자기가 접은 건 엄마가 갖기로 하고.

아이가 기어코 어려운 걸 골라서 혼자 접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았으나 실패하더라도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거나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짜증 내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가 작정하고 애교를 부리면 엄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그럴 때는 꼭 아이가 여러 번 해봤는데도 잘 안된 경우에 한해, 내가 접을 수 있는 수준인지를 보고 아이도 함께 접게 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 갑작스레

종이접기 지옥에도 때아닌 봄이 찾아왔다.

나는 어릴 때도 종이접기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종이접기 하는 게 매번 스트레스였는데

이렇게 해방의 순간이 갑자기 찾아올 줄이야!


시골에 있는 동안

아이는 종이 접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정해진 TV시청 시간이 끝나면 심심해서 그랬을지도.

밖에 나가기엔 너무 덥고

시골에는 장난감도 별로 없으니

제일 만만한 색종이가 눈에 뜨였겠지.

꽤 오랫동안 종이접기 하는 걸 봐왔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새벽 6시 30분쯤,

 스스륵 방문을 열고 나가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내 거실로거실 돌소파에서 주무시던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더니 TV소리가 들렸다.

30분쯤 지났을까? TV를 끄고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종이 접기에 빠져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접다가

잠깐 쉬겠다며 TV를 틀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접고 오리고 붙이고,

그러다 한 번씩 엄마한테 달려와 뭘 만들고 있는지

어디까지 만들었는지, 이제 뭘 만들 건지 중간보고를 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처음에는 ‘네모아저씨’나 ‘종이쌤’ 채널에서 색종이 한 장으로 접는 걸 하더니, ‘페이퍼빌드’ 채널에 나오는 걸 접으면서 급격하게 종이 접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학 접기 기본형’이라는 게 있는 데, 그 기본형을 가지고 오리고 연결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짜릿해서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듯 보였다.

집에 ‘페이퍼빌드’ 책이 두 권이나 있을 만큼 예전에도 했던 건데,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혼자서 해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 중급자용‘이라고 표시된 영상을 보고 완성한 후에는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이제는 엄마보다 자기가 다 종이접기를 잘한다며 놀려댄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맞장구를 치며 아이를 치켜세운다.

이로서 나는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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