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 정보를 주고받는 카페에 어느 날 이런 글이 올라왔다.
“해외에서 한 달 혹은 그 이상 살기를 계획하는 분들은 남편이 걱정되지는 않나요? 전 남편이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하던데…”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질 수 있는 남편의 외도를 걱정하는 글이었다. 같은 걱정으로 망설인다는 사람도 있었고 배우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만 모르게 하면 된다는 에어컨 강풍 정도의 쿨내가 나는 댓글도 있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있다.
내 생각은 그랬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는 거라고,
내가 오랜 시간 집을 비우든 아니든.
남편은 지난 7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성실하고 헌신적인 배우자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외롭다고 외도를 할 가능성이 높을까, 아니면 이전부터 바람기가 보이던 사람이 외도를 할 가능성이 높을까?
이 사람은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이 아니다. 사람일에 절대적인 건 없다. 어느 날 내 남편에게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올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지나가는 바람에 갈대처럼 쉬이 흔들리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단지, 이 모든 건 한낱 가능성일 뿐이고, 지금 내가 붙잡아야 하는 건 오직 내 눈앞에 있는 진실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 해 온 이 남자와의 모습과 그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신뢰라고 해야할까.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정말 이 남자를 믿고 있냐고. 들키지 않았을 뿐, 이미 나를 배신했을 수도 있지 않냐며. 그럼 대답은 더 쉬워진다. 내가 집을 장기간 비우든, 비우지 않든, 이미 일어날 일은 일어났고 나의 부재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아이와 여행을 준비하며 다른 우려도 많았다.
위험하지 않겠냐고.
나 역시 불안했고, 몇 번을 주저하기도 했다.
행여 아이가 크게 아프거나 다치면 어떡하지?
나에게 사고가 나서 아이만 그곳에 혼자 남겨지면 어떡하지?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으면 어떡하지?
불안을 먹은 걱정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미디어 화면에 며칠에 한번 꼴로 뜨던 뉴스들.
몇 중 추돌로 사상자 발생.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지나간다. 누군가는 알지 못하는 사이 죽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도 하고, 우리 주변의 평범한 누군가는 끝내 삶을 마감한다.
그래서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을 우연히 접할 때,
마음이 무겁고, 생의 덧없음에 몸서리를 친다.
언젠가는 그 불행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행이 나만 피해갈 이유 따윈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고, 그리고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는.
누구나 죽고,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