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Mar 22. 2024

그래 가보자, 메시 보러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같은 도시를 다시 방문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돈도 시간도 한정적이라 이왕이면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으니까. 그런데 유일하게 세 번이나 방문한 도시가 있다.

바로 바르셀로나, 스페인.

사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는 영국이었고, 지금도  20대 초반에 1년간 머물렀던 영국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갖고 있다. 그런 영국의 런던도 요크셔 지방에 있는 페나인 캠프힐 커뮤니티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할 때 여행으로 며칠 들린 이후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는 무려 세 번이나 다녀왔다니…. 바르셀로나의 매력은 대체 뭘까?


바르셀로나 특유의 활기가 길을 걷기만 해도 들뜨게 하고, 다양한 얼굴을 한 골목들을 거닐다 보면 낯선 세계의 자유로운 여행자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설렌다. 특히, 그늘진 골목 끝에, 태양빛을 받아 웅장하게 빛나는 성당의 모습이 보이는 그 풍경이 나는 지금도 가슴 벅차게 좋다.


두 번째 바르셀로나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얼떨결에 방문했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10살 많은 친구 Gabi와 함께 무작정 떠났다. 이스라엘에 입양된 팔레스타인 출신인   Gabi는 그녀의 출생 배경만 들어도 알법한, 삶의 굴곡이 많은 친구였고 그만큼 내가 언니처럼 믿고 따랐다. 그녀가 2008년 부활절 휴가 기간에 바르셀로나와 리스본에 가자고 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따라나섰다. 바르셀로나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의 지휘아래 맨체스터에서 라이언에어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그 시절 나는 순수했고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무계획형 인간이었다. 아무런 욕심도 없이, 모든 일정을 Gabi가 이끄는 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그녀에겐 카리스마가 있었고 무엇보다 훌륭한 스페인어 실력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구엘공원도 가고 보케리아 시장과 람블라스 거리, 사그라다파밀리아에도 들렸다. 사실 그 당시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왜 유명한지 잘 알지 못했다. 두 번째로 바르셀로나에 가기 위해 알아볼 때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다.


여행 셋째 날이었던가, Gabi가 그녀의 독일인 남자친구와 다투었다. 그러고 보니 바르셀로나에선 그녀의 남자친구도 동행했었다. 이미 1월 1일 폴란드의 Krakow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에 가기 위해 독일  드레스덴부터 Krakow까지 함께 동행한 사이였다. 너무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서인지, Krakow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인지 폴란드를 갔었다는 기억조차 잊고 있었다. 다행히 그와 Gabi를 비롯해 그의 친구들과    Krakow의 어떤 성벽에 서서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시가지를 바라봤던 기억만큼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내가 폴란드에 갔었던 게 허구가 아닌 사실임을 믿게 해 준다.

그와는 특별히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은 사이였다. 하지만 그 커플이 다툴 때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현타가 왔다. 그들이 싸운 이유는 동물원 때문이었다. 남자는 동물원을 가고 싶어 했고 여자는 동물을 우리 속에 가둬놓는 그런 시스템을 혐오했다. 그녀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였고, 리스본에서 내가 어린 시절 개고기를 먹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 얼굴을 볼 수가 없다며 몇 시간 동안 나를 피할 정도로 개를 사랑했다. 결국 우리는 하루 동안 뿔뿔이 흩어져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나는 이 결정에 동의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당황했다. 한 순간 미지의 세계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지금 같으면 바로 네이버에 검색하거나 재미 삼아 챗GPT에게 일정 좀 짜달라고 부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8년이었다. 친구를 믿고 아무 계획도 없이 바르셀로나까지 날아온 나로서는 무얼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종이지도 한 장을 들고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었다.



어떤 성당 안에 들어가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하기도 했고, 광장 바닥에 주저앉아 케밥을 먹어치웠다. 아마도 고딕지구 근방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처음의 막막함과 달리, 혼자 탐험을 떠난 것 마냥 복잡한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를 헤매는 게 재밌었다. 어느 순간 종이지도도 보지 않고(길 찾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 다녔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서야 나는 온전히 바르셀로나의 매력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2016년에 나는 다시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이제 막 나의 남편이 된 남자와 함께.

대게 신혼여행으로 하와이나 몰디브 같은 휴양지를 많이 가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다시 유럽에 가보고 싶었다. 유럽여행 경험이 전무했던 남편도 기꺼이 동의했다. 어쩌다 스페인을 선택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축구 덕후인 남편의 취향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남편은 FC바르셀로나와 메시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는 오래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남편은 메시 성지순례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첫 번째 방문과 다르게 이번엔 일정도 짜고 가고 싶은 식당도 미리 알아보았다. 내가 큰 틀에서 계획을 짜면 님편은 구체적인 정보를 찾고 필요한 경우 예약을 했다. 우린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였다. 그때 그때 날씨와 컨디션 등에 따라 계획이 무용지물이 될 때도 많았다. 그럴 땐 공들인 계획 따윈 가차 없이 폐기하고 그 순간 끌리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들을 찾아가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대부분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유일하게 눈에 띄게 변한 건 다름 아닌, 사그라다파밀리아였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은 채 자기만의 속도로 새로운 벽들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부에도 들어가서 관람을 했는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신비로운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을 위해 캄푸누 성지순례에 동행하기도 했다. 한낮의 열기를 뚫고 경기장에 들어가 기념사진도 남기고 박물관에서 그가 열렬히 사모하는 메시의 발자국을 경건하게 살펴보았다.



그 많은 장소 중에 남편과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바르셀로네타해변이었다. 탁 트인 짙푸른 바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과 달리 아직 선선함을 머금고 있는 6월 중순의 바닷바람, 해변 곳곳에 자유롭게 누워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비로소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간절히 바라던 자유를 얻은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두 번째 바르셀로나에서는 너무 웃기면서 슬픈 경험도 했다. 신혼여행이다 보니, 힘을 좀 주고 싶었던 남편은 미술랭 식당을 가보자고 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몇 달 전부터 메일을 보내 예약을 했다. 초여름이라 해가 길다 보니, 저녁 8시 30분부터 식사가 가능했다. 숙소에서 좀 쉬고 나왔어야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오후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숙소에 들려 서둘러 환복만 하고 나왔다. 생애 첫 미슐랭 식당을 영접할 생각에 무척 들떠있었다. 그것도 고급 호텔에 있는 비싼 레스토랑 아닌가! 성공적으로 예약한 남편을 한껏 칭찬하며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그 후로 우린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다. 어두침침하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우린 급속도로 잠에 취해버렸다. 세 번째 코스를 먹을 때부터였던가….. 어서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음식도 퓨전인 데다 너무 달고 짜서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먹는 도중에 순간 잠이 들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에도 다녀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든 코스요리가 나오고 난 후, 12시가 넘어서야 우린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찬 공기를 마셨더니 그제야 잠이 깼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둘이 마주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기껏 비싼 돈 주고 가서 이게 웬 개고생이람! 우린 앞으로 퓨전요리 하는 고급 레스토랑은 믿고 거르자며 손가락도 걸었다. 몇 십만 원 내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그러부터 3년 뒤, 우린 다시 바르셀로나로 날아갔다.

18개월 남짓 된 아들을 데리고.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메시 경기 실제로 보면 진짜 좋겠지?”


연애 시절부터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아이가 태어난지 50일쯤 된 어느 나른한 봄날,

새벽에 축구 경기를 보고 일어난 남편이 또 말했다.

“아~메시 경기 직접 보면 진짜 좋을 거 같아.”

원래대로라면 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고 싶음 가. 보내줄게.”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 인사같은 그런 말들.


그런데 뭐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걸까?

내 입에서 불쑥 뜻밖의 말이 나와버렸다.

“그럼 갈까? 진짜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남편의 화들짝 놀란 표정을 보니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거라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듯 했다.

놀람의 순간이 지나고, 나에게 재차 물었다.

“진짜 갈거야?”

“가자. 그렇게 맨날 노래를 부르는데 가보자.”


그렇게 우리의 스페인 여행이 결정됐다.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메뉴를 고를 때보다도 더 즉흥적이고 순식간에 정해졌다.

우리가 스페인을 가기로 결정한 후 우리에겐 뜻밖의 힘든 시간이 펼쳐졌다.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아지셔서남편은 격주 마다 서울에 있는 시댁에 갔다. 연로하신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독박육아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을, 남편이 집에 있는 주말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는지. 혼자 묵묵히 독박육아를 해내가는 게, 아픈 어머니를 돌봐야하는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겨울이 다가올 수록 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고 남편은 매주 어머니께 갔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아슬아슬한 시간들이었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던 그 시기에도 우린 바르셀로나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행에 대한 부푼 꿈이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치료가 효과를 보이자, 우린 미뤄뒀던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2018년 2월에,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이젠 꿈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신혼여행에서 캄푸누에 갔을 때도 다시 바르셀로나행을 결심했을 때도 나는 여전히 메시나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축구 열정이 남다른 남편이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해서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르셀로나행을 결심 한 건, 오직 남편을 위해서였다. 항상 뭔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쪽은 나였다. 남편은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하던 소원들도 기억하고 들어주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남편이 유일하게 반복적으로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이루어 주고싶었다. 이거야 말로, 이 사람이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일테니까. 남편이 메시 경기를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한 2017년 4월의 어느 봄날에, 문득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서로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함께 하며 그렇게, 먼 미래를 바라보며 달려가기만 할 게 아니라 이 순간을 살아보자고.


남편의 버킷리스트를 이뤄주기 위해 시작한 여행인 만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메시의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FC바르셀로나의 홈경기가 있어야했고, 메시가 출전을 해야만했다. 원래 리그가 개막하는 8월 마지막 주에 맞춰 가려던 계획이 남편의 회사일때문에 9월 중순으로 늦춰졌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리그 개막을 앞두고 메시의 부상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우리가 있는 동안에 홈경기 일정이 있었지만, 메시의 출전은 불투명했다. 우리가 출발하기 바로 전 주까지도 메시는 결장이었다. 모든 걸 운에 맞긴 채, 우린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하늘이 도왔던 걸까? 남편이 보러 간 경기에 메시가 부상 이후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저 우연히 우리의 일정에 맞게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뿐인데, 괜히 마음이 벅차올라 남편에게 말했다.


“작년에 엄청 고생했잖아. 매주 어머니 돌보러 가느라 몸고생 마음고생 하면서도 집에서는 내색도 안하고 잘 버텨줬잖아. 하늘이 상주나보다.”


경기가 밤 10시에 시작해서, 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너무 무리일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와 내가 안가는 대신 남편에게 VIP석 티켓을 선물해 주었다. 이왕 보는 게, 꿈에 그리던 메시의 경기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라고.


인생은 타이밍이다. 몇 년 후 메시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했다. 남편이 보고 싶어했던 건 단순히 메시의 경기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팀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메시의 경기였기에, 우리는 아주 절묘한 타이밍으로 꿈을 이뤘다. 아이가 좀 더 큰 다음에, 돈을 좀 더 모은 다음에, 그런 핑계들로 자꾸 미뤘다면 그의 버킷리스트는 메시의 이적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졌을 것이다.



18개월 아이와 스페인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대부분 너무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을 했다. 아이가 어차피 기억도 못할텐데 좀 더 크면 가는 게 낫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힘든 순간들이 차고 넘치게 많았지만, 남편의 버킷리스트를 차치하더라도, 18개월 아이와 스페인에 온 걸 후회 한 적은 없었다.

바르셀로나에 저녁에 도착해서, 다음 날 기차를 타고 시체스로 떠났다. 2박 3일 일정이었는데, 환경이 바뀌면서 바로 감기에 걸맄 것도 모자라 아이는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오후 4시에 깊은 잠에 빠졌다. 시차 적응이 문제였다. 그래도 틈틈히 동네를 산책하고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고 남편과 번갈아 가며 밖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가성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힘들고, 관광도 하루에 기껏해야 한 두곳을 둘러보는 게 전부다. 하지만 각자 상황에 맞게 여행 스타일도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면 모든 게 수월해진다.


조금 더 템포를 늦추고, 조금 더 욕심을 내려놓고.


그러면 소소한 것들에서 즐거움이 생겨난다. 매일 매일 치열하게, 바쁘게 사는 건 한국만으로 충분하다. 여행에서는 느리게 걷고,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아이가 허락하는 동안 느긋하게 앉아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그러다보면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대화를 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에게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장난스럽지도 않게 그냥 툭하니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멋진 풍경을 보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이무렇지 않게.


이미 이번 여행을 결정하는 순간, 삶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자고, 먼 미래만을 바라보면 가다가 지칠수도 있고, 무엇보다 사람의 앞일을 누가 알겠어. 모든게 완벽하게 준비된 미래의 그 순간에 우리가 이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떠나자, 우리 두 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무엇보다 우리가 이렇게 두 손을 맞잡고

함께할 수 있을 때.


시체스
시체스
시체스
시체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비르셀로나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비르셀로나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발렌시아
발렌시아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옆에 있어 다행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