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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Mar 26. 2024

제2의 직업을 찾습니다.

사랑뿐만이 아니라 일에서도 권태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직장 생활 10년 차가 넘어서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큰 사건이나 계기가 있다면 지금 당장 그만둬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겠지만, 그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된 권태는 그런 의지조차 달구지 못했다. 그저, 언젠가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뜨뜻미지근하게 마음속에 부유했다. 구체적인 형체도 없어서 뜰채로도 떠지지 않는 그런 종류의 부유물이었다. 종종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도 있었고, 자괴감에 얼굴을 감싸안는 순간도 있었지만, 대게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딱히 기억나지 않는 그렇고 그런 하루였다.


입버릇처럼 제2의 직업을 찾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곳을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재주도 변변찮고, 특별히 내세울만한 재능도 없었다. 집안일이라도 잘하면 전업주부를 선언하겠지만, 집안일은 내가 섣불리 덤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집안일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청소연구소의 매니저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남들이 본받고 싶어 할 만한 엄마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 마음 편한 게 제일 중요한 불량엄마에 가까웠다. 그나마 내가 남들에게 잘한다고 내세울 수 있었던 건 공부 하나였는데, 새로운 걸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제2의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이라는 핑계도 한 몫했다.


 떠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혹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몇 년간 쌓여왔다.


작년 겨울이 되어서야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다. 육아일기도 꾸준히 써왔고 곁가지로 블로그에 글도 종종 써왔기에 친숙했고, 혼자 조용히 시간 날 때 쓰는 거라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일상에 당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날 일도 없어서 한 발 슬쩍 뻗어볼 만했다.

단조로운 일상이 숨 막히면서도, 삶을 뒤흔드는 변화는 용기가 나지 않던 나에게 딱 알맞은 도피처 같았다.


글을 쓰다 보니, 라디오 작가를 꿈꾸던 14살 소녀를 오랜만에 마주하기도 했다. 12살 때부터 시골을 떠나 큰집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내성적이고 조용했던 소녀에게 라디오는 가장 편안한 친구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라디오 작가를 꿈꾸었던 것 같다. 국어 선생님께서 어느 날 내가 쓴 수필을 보시고 여러 대회에 나가보라고 권유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도 멋질 거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동경했다. 하지만 가난으로 인해 서럽고 고달팠던 나의 부모님과 큰어머니는 극구 말리셨다. 작가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하면 된다고. 가난한 집의 딸은 불확실한 미래에 섣불리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사촌 오빠도 미술을 좋아했던 사촌언니도 다를 바 없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났던 언니 오빠들은 진즉 현실을 받아들이고 부모님이 바라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른들의 만류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오빠는 국내 최고의 기업에 들어가 초고속으로 승진을 했고, 언니는 한의사가 되어 의사 남편을 만나 영재 소리를 듣는 아들을 키우고 있다. 나의 경우 그에 비하면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고 회사원 남편을 만나수도권에 집 한 채 마련하고 아들 하나 키우며 살고 있다. 누구 하나 더 이상 가난으로 서러울 일도, 고달플 일도 없어졌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쩌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도 같다. 그래도 문득 궁금할 때가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함과 미련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


다시 글을 쓰면서 어쩌면 많이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글을 쓴 들 내가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과연 몇 명에게나 내 글이 울림을 주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나의 글에 확신이 없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글 쓰는 일에 전심을 다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10년이 지나있을 때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남편과 같이 은퇴하자고 약속한 기한이 10년 뒤이다. 그때 나는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은, 가슴 뛰는 일을 찾았을까? 교사가 되기 위해 하루에 13시간씩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전력질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즐거움과 열망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달려드는 날이 다시 찾아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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