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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May 08. 2024

내가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마디

잔병치레가 많긴 했지만

잘 먹고 잘 놀고

무탈하게 자라던 아이가

갑자기 만성 중이염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큰 수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전신 마취를 해야 하고

어찌 됐든 ‘수술’이라는 말이 주는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기만 하다.

하루 종일 경황이 없었다.

지금 병원에서 수술을 할지,

더 유명한 병원에 지금이라도 옮길지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피검사를 거부했다.

약 먹어도 중이염이 안 나으면 수술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가벼운 수술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둔 터였지만,

자기 딴에도 무섭고 불안했나 보다.

지켜보는 엄마 아빠 마음도 불안과 걱정으로

한없이 흔들리는데 어린아이는 오죽할까.

가고자 했던 병원은 7월은 돼야 초진을 볼 수 있다기에

지금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청력검사 결과 청력이 70% 수준이라기에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수술이 잡혔다.

남편과 각자 일정을 조율했다.

남편은 이번주에 병원을 데리고 다니느라

이미 회사를 많이 빠졌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빼야 했다.


교사인 나는 내가 원한다고 바로 연차를 쓸 수 없었다.

동료 선생님들께 일일이 부탁하며 수업을 교환했다.

다행히 어느 한 분도 수업교환으로 인해

하루 수업이 5시간을 넘거나 3시간 이상 연강이 되는

분은 없었다. 같은 교사로서 그런 상황에서는 정말    수업교환해 달라는 말이 떨어지질 않는다.

수업교환을 요청드린 분들이 흔쾌히 해주신다고

하셔서 가족 돌봄 휴가(무급)를 올렸다.

가족 돌봄 휴가(유급)는 이미 지난번에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써버렸고,

연가는 2학기 휴직 예정이라

절반 밖에 못 쓰는데 그걸 모르고

겨울방학에 여행 간다고 많이 써버려서

이제 하루 남았다.

무급이든 유급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얼마뒤 교감선생님께 메시지가 왔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무적인 안내였다.

교장선생님께 허가를 받은 후 다시 메시지를 주고

이후에 증빙서류를 첨부하라는 것.

메시지를 보고 있는데 부화가 치밀었다.

결재자를 교장까지 지정을 했으니까

교장선생님이 보고 사유가 탐탁지 않으면

반려를 하든 할 텐데 꼭 그렇게까지 메시지를

보낼 일인가 싶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뒤숭숭한데

일일이 교감, 교장을 찾아다니며 사정 설명을 하고

읍소라도 해야 하는 건가.


교장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의 중이염 수술로 가족 돌봄 휴가(무급)를 쓰고자 하니 허가해 주십시오.”


10분쯤 지났을까?

교장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 수술 때문에 휴가를 쓰는 건데 왜 유급을 안 쓰고 무급을 쓰냐고 하셨다. 다른 일도 아니고 아이가 아파서 그런 건데 무급을 쓰는 건 아닌 거 같다며, 연가를 쓰는 건 어떻냐고 물으셨다. 무급휴가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전화기 넘어 교장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아이가 수술을 받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 와서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인데,

오래도록 오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교무실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마음껏

눈물을 흘렸다.

말 한마디의 힘은 이렇게나 크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얼마나 하고 살았을까?

그저 내 할 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심히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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