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열이 40도를 웃돌았다.
해열제를 종류별로 써봐도 쉽사리 열이 잡히질 않았다.
토요일에 서핑레슨을 받고 숙소로 돌아온 후
아이는 계속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목이 부어있을까 봐 섣불리 에어컨도 키질 못하겠고
아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침대 위가 후끈후끈했다. 그 와중에도 추운지 이불을 찾아 몸을 움츠리는 아이. 밤새 고열이 나는 아이를 지켜보는 건 한국이든 발리든 두려운 일이다. 행여 한 밤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섣불리 잠을 잘 수 없어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아이의 뜨거운 살갗에 닿자 화들짝 놀라 정신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혼자 열이 펄펄 끓는 아이 곁을 지켰다. 남편 회사 출장이 급격히 늘어났던 작년, 아이도 유달리 병치레를 많이 했다. 열이 나도 38도 정도였던 아이가 작년에는 40도 넘게 치솟는 경우도 많았고, 처음으로 폐렴에도 걸렸다. 자주 감기에 걸려도 중이염은 잘 안 왔는데, 작년에는 감기 걸렸다 하면 중이염까지 달고 오더니, 올해 초에는 아무리 약을 먹어도 중이염이 낫지 않아 수술까지 해야 했다.
발리에 오면서도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역시 아이의 건강이었다. 발리밸리는 어른도 고통스럽다는 데 행여 아이가 걸리면 얼마나 힘들까! 간혹 뎅기열 후기도 올라오던데 혹시라도…. 모험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엄마로서 나는, 종종 그 위험을 생각하면 이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에 빠지곤 했다. 모험과 안전함 중 선택을 해야 할 때, 아이 엄마가 모험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나는 안전한 한국을 떠나 발리밸리와 뎅기열은 물론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와 원숭이의 습격 등 온갖 위험이 도사린다는 미지의 세계를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이가 이 세계 어디를 가든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과 적응력 만렙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지켜본다는 건,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온 나의 선택을
후회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의 욕심이었을까?
아이의 고열이 지속되자 새벽부터 택시를 타고 큰 병원인 데다 후기도 좋은 실로암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참 타이밍도 이상하지? 병원에 도착하자 아이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 말고는 환자도 없는데 밖에서 한 시간가량 방치되다시피 한 후 겨우 피검사 하나 받고는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왔다. 수액이라도 맞거나 항생제라도 처방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저 필요 없다는 단답형의 말만 듣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이 증상이 응급실에 입원할 정도로 심각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유도 모른 채 고열과 씨름해야 하는 순간순간이 두려웠다. 감기 증상도 심하지 않은데 고열은 떨어지질 않았다. 결국 다음 날 숙소에서 알게 된 한국 엄마의 추천으로 한 소아과에 다녀왔다. 종합해 보면 실로암 병원 응급실 당직 의사가 했던 말과 큰 차이는 없지만, 소아과 의사 특유의 섬세하고 친절한 설명 덕분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아이 면역력이 바이러스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아 계속 열이 나는 거라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항생제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항생제에 대해선 엄마들에 따라 최대한 안 먹이려고 하는 부류도 있고, 아프면 먹여야지라는 부류가 있다. 항생제 내성이 위험한 건 알지만, 이 낯선 땅에서 원인 모를 열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항생제를 받아와 장로불생의 약이라도 되는 듯 아이에게 한 숟갈 떠서 조심스레 먹였다.
열이 난 지 3일째, 다행히 이제 밤에도 40도 넘게 치솟지는 않고 39도 정도로 이마가 뜨끈한 정도이다. 그러다 아침에 해열제를 먹이면 38도 아래로 진정이 된다.
아픈 아이를 간호하다가 옛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근무 중에 아이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철썩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머니, 아이가 열이 나요.”
전화가 너머 들려오는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저 지금 갈 수가 없어요.”
아이가 열이 난다는 데,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해야만 하는 말이 이것뿐이라니, 말을 하는 도중에 눈물이 차올랐다. 울음을 삼키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일을 했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며 가장 속상하고 한 맺히는 순간이다. 왜 그 시절 기억이 떠올랐을까?
그래, 그래도 지금은 내가 옆에 있어줄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