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에서 그림 그리기로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종이접기에 한 동안 푹 빠져 지냈다. 유튜브에서 본 엄청 멋지고 어려운 것들을 엄마 아빠에게 만들어달라고 해서 우리는 종이접기 지옥이라 불렀다. 그것 때문에 아들에게 버럭 언성을 높이는 날도 많았다. 유튜브 보고 따라하다가 너무 어렵고 잘 안되니까 승질머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인 아들에게 짜증을 퍼붓는 못난 어미였다. 집 안에는 종이접기 결과물들이 넘처나서 아들이 유치원 간 사이 몇 봉다리씩 몰래 내다버렸다. 작년 여름부터 부쩍 자신감이 붙은 아들은 더 이상 엄마를 종이지옥에 끌어들이지 않고 혼자 하루 종일 앉아 종이를 접고 찢고 붙이고를 반복했다. 저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몇 시간씩 의자에 앉아 종이를 붙잡고 사투를 벌였다. 발리에 가서도 한 동안은 종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말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종이접기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신이 그린 그림이 너무 마음에 안들고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 그림 그리는 거 자체를 싫어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림 그리는 게 재밌다며, 학교 가서 영어 쓰라고 사 준 연습장에 온갖 캐릭터를 그려대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리는 걸 소개하는 영상을 발견하고는 숙소에서 주구장창 따라 그렸다. 식당이든 까페든 항상 연필과 노트 한 권이면 충분했다. 가끔 깜빡하고 빈 손으로 나가는 날에는 음식 언제 나오냐, 왜 이렇게 안나오냐, 심심한데 어떡하냐 등등 엄마의 염장을 질렀다.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아이는 수채물감을 찾아서 들고 나왔다. 있는지도 몰랐던 물감을 용케 찾아내서 몇 시간 동안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 이후로도 매일 캐릭터도 그리고 사람 얼굴도 그리고 입체 도형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무언가에 흠뻑 빠져서 해 본 아이들이
언젠가 다른 것에도 깊이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열정에 불꽃을 일으킬 부싯돌만 있다면
두 번 세 번 빠져드는 건 쉬운일이지 않을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충분히 몰두할 수 있는 시간과
그 몰입의 경험이지 않을까?
한국 돌아오면 당장 학원을 돌리리라 마음먹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긴 긴 겨울동안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 아들을
옆에 끼고 있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축구랑 수영만 보내고 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거나
충분히 하게 해주자.
다음 번엔 뭐가 될지 모르겠으나
마음에 불꽃이 파바박 일면
뜯어 말려도 고집스럽게 할 녀석이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