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작을 알려주는 입추이건만 하늘을 찌르는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아직은 한여름이라 성토하네요. 9시를 갓 넘은 시간이거늘 나무 그늘에 자리 잡은 홍점알락나비와 어린 방패광대노린재들 곁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예덕나무 이파리 앞뒤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린 방패광대노린재들을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보는데 등줄기로 땀이 쏟아져 내립니다.
상수리나무 수액을 독차지한 장수풍뎅이와 꽃꿀을 파고드는 남방노랑나비는 말매미의 울음소리나 뜨거운 태양 따위에 1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며칠째 열대야와 일사병을 견디고 있는 터라 소리와 더위에 민감해져서인지 잘 먹고 잘 노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리만족합니다. 여름이니 더운 걸 어쩌겠습니까. 절벽 위에 우뚝 서서 온몸으로 해바라기 중인 남방오색나비처럼 달관할 도리밖에.
에어컨이 빵빵한 국립 제주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을 찾아갔습니다. 일필휘지의 장승업의 새 그림이 가득한 병풍과 ‘남나비’라는 별명을 얻은 남계우의 나비들을 감상하고 밖을 나오자마자 습한 더위가 온몸을 감싸네요. 이 와중에 박물관 정원수로 심어진 하귤 이파리에 있는 호랑나비 알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무래도 처서까지는 마음을 비워야겠습니다.
당신은 깊이 생각하여 다만 이처럼 나아가십시오,
시시때때로 아주 고요한 곳에 머무르면서
“내려놓거라.”라는 부처 말씀을 절대 잊지 말고,
다만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 내려놓는 마음공부를 착실히 하되,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꼭 두려워하지만 말고,
또 자꾸 떠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니,
떠올리고 두려워하면 도를 깨닫는 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 대혜보각선사서 ‘증 시랑 천유에게 보낸 답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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