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잊고 자꾸만 타입슬립을 떠나는 그녀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언젠가 그녀의 그 과거마저도 잊히지 않을까 하는 허전함을 위해,
그리고 그녀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해야 하는 나와 내 가족들의 위안을 위해,
그녀와 함께 타입슬립을 떠나기로 하다.
시작은 이년 전부터 인듯하다. 4남매를 낳은 홍 여사는 대화 중에 자꾸만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거나, 불과 일주일 전 우리들과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하셨다. 큰딸(언니)과 둘째 딸(나)이 의논 끝에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치매 검사를 해보자며 엄마에게 제안을 했고, 조마조마해 하는 우리들(혹시 화를 내실까 아니면 걱정을 하실까 하는)과는 달리 ‘그래라’하시며 흔쾌히 보건소로 가는 길을 따라나섰다. 다행히 경도인지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흔히 치매를 지연해 주는 약 따위는 처방받지 않은 채 ‘멀쩡하다니까 그러네’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보건소를 나섰다. 정말 다행인 걸까?
홍 여사의 이름은 4글자이다. 1942년 2월생인 홍 여사는 일본으로 밀항해서 건너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나셨다. 일본에서 태어나 ‘도꼬야마 다소꼬’라는 일본식 이름을 얻으셨고, 4살이 되던 해에 귀향을 했지만 지금도 4글자인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름을 쓰는 난은 언제나 원고지의 그것처럼 세 칸으로 나뉘어 있곤 했는데 그때마다 홍 여사의 이름을 쓰느라 곤혹스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일본식으로 이름을 쓰는 것이 불편했던 지라 주변 지인분들과 가족끼리는 ‘영숙’이라는 이름으로 애칭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증을 비롯한 공공 기관에 제출하는 서류에는 흔치 않은 4글자 이름을 또박또박 적고 있다. 간혹 어떤 이는 이름이 왜 4글자인지 묻기도 한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일제강점기 이후 제주 도민들의 밀항의 역사가 그녀의 이름 4자에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으니......
홍 여사의 아버지는 해방이 된 이후 고향으로 가자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일본 생활 그만하고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가자고만 하셨다 한다. 결국 어머니와 어린 자매는 아버지를 따라 제주로 들어오셨고, 그해(1948년) 11월 어느 날 홍 여사의 아버지는 노랗게 익어가는 조밭에서 일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서는 총살을 당하고 만다. 4.3이었다. 당시 홍 여사의 어머니는 넷째 딸을 임신 중인 상태였다. 가을 들녘에 노랗게 고개 숙인 조밭을 지날 때마다 홍 여사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꺼내 놓으신다. ‘그때 제주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