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잊고 자꾸만 타입슬립을 떠나는 그녀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언젠가 그녀의 그 과거마저도 잊히지 않을까 하는 허전함을 위해,
그리고 그녀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해야 하는 나와 내 가족들의 위안을 위해,
그녀와 함께 타입슬립을 떠나기로 하다.
“MRI 검사 결과 뒤쪽 혈관 세 군데 안 좋음. 소공성 뇌경색(여러 군데). 뇌 위축. 해마 위축. 뇌하수체 선종(종양). 피검사 결과 정상. 콩팥 수치 정상”
2023년 9월 12일에 받은 홍 여사의 1차 치매 검사 결과다. 생각보다 심각하다. 홍 여사의 인지 상태가 연초와 비교해도 많이 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세상에 뇌 상태가 이 정도까지 비정상적이니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일단은 혈소판 응집 저해제인 아스피린과 치매 증세 완화제 아리셉트정 5mg을 처방받았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증세 완화제 복용량이 많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엄마 토요일 8시쯤 우영팟 가게이~~”
예전에는 이런 약속을 하면 제날짜에 미리 대문 밖에 나와서는 내가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랬던 홍 여사가 지난 4월부터는 약속한 날까지는 삼 일이나 남았음에도 “우리 산에 가기로 한 게 오늘이가?”라며 삼일 내내 아침마다 확인 전화를 해온다. 할 수 없이 모든 약속을 하루 전에 말씀을 드리기로 전략을 바꿨는데, 엊그제는 약속한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약속 시간 까지 침대에 누워계셨다. 치매 판정을 받은지 한 달만에..... 치매 완화제 용량이 너무 적어서 약효가 안 드는 걸까?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우영팟으로 가는 동안 매번 홍 여사는 잃어버린 팔 토시 얘기를 해왔다. 분명 새것 하나가 어디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며. 몇 년 전에 내게 줘서 내가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없는 거라고 했는데도 우영팟에 가는 날에는 팔 토시를 자꾸만 없어졌다고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 그 얘기를 꺼내길래 이따 집에 가면 장롱이랑 여기저기 같이 뒤져 보자고 한 뒤 얼른 다른 화제로 돌렸다.
2022년까지 홍 여사는 ‘한올한땀’이라는 시니어클럽 활동을 하면서 나에게 팔 토시뿐만 아니라 작은 에코백과 앞치마 등 이것저것 많이 챙겨 주셨다. 10대 때부터 밥 벌이한다고 부산까지 가서 배워 온 재단, 제봉 실력이 70년이 다 되어서까지 쓸모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지금은 눈도 안 좋으니 예전만큼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름의 빼어난 기술 덕에 소싯적에는 가족들의 생계에 크나큰 보탬이었고, 나이 들어서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어깨 가득 싣고 다니곤 했더랬다.
어린 홍 여사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같은 고향 언니를 따라 부산에 갔다고 한다. 동네 목욕탕에서 그 언니와 서로 등을 밀어주다가 우연히 알게 된 정보를 귀담아듣고는, 야무지게 보리쌀 한 말을 팔아 여비를 장만하고 고향을 떠났다. 아마도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어떻게든 거들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으리라. 같이 올라간 언니들과 함께 간 곳은 아동복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부산 영도다리 근처에 있는 공장에는 멀리서 온 여공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제공했고, 그곳에서 십 년 가까이 먹고 자면서 천을 자르고 미싱을 돌렸다.
당시 홍 여사 주변에는 동향의 언니와 또래들이 대부분이어서 객지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휴일에 모처럼 언니들과 부산 거리에 나가 우연히라도 교복을 입은 여고생과 마주치게 되는 날이면 묘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몰려오지 않았을까. ‘나도 공부 잘 했었는데, 공부하는 것이 좋았는데...’
20대 중반쯤에 부산 생활을 정리한 홍 여사는 외사촌 언니와 함께 하얀 백사장과 비취색 바닷물이 아름다운 곽지에서 ‘은하수 양장점’을 개업한다. 드디어 폼 잡고 재단 실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구나 싶었지만, 외사촌 언니의 결혼으로 은하수 양장점은 몇 년 해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다고...... 비록 외사촌 언니와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곽지의 은하수 양장점 덕에(‘때문’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끊으려 해도 좀처럼 끊을 수 없었던 질긴 인연의 매듭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