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할망의 관찰일지 – 올레 12코스

2026년 2월 25일 무릉-용수 올레

by 나비할망

무릉외갓집. 길 한가운데에서 시작되곤 했던 여느 올레길과 달리 12코스는 ‘집’에서 출발합니다. 그럼에도 싸늘한 마당에는 우리를 배웅해 줄 외갓집 식구가 보이지 않네요. 담장 밖 멀구슬나무와 이웃한 통신탑 위에는 무려 2층짜리 까치집이 얹혀 있지만, 이 집 주인 또한 자취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이들은 몇 km쯤 날아다니며 가느다란 가지를 물어 나를까요. 시작점 스템프를 찍고 외갓집을 나서는 우리는 오늘 하루 17.5km의 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들어선 무릉 마을의 농가는 무 수확을 앞둔 밭을 비롯해. 푸릇푸릇한 양파와 마늘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잠시 계절을 잊게 합니다. 물이 가득한 도원연못에서는 물닭 네다섯 마리가 버려둔 무를 쪼아먹다 말고 인기척에 놀라 급히 연못으로 도망갑니다. 제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규모의 연못이다 싶었는데, 침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저류지라는 안내문과 함께 ‘신도 생태연못’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저류지 경계선을 따라 식재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정자와 돌담도 가지런하지만, 물속 생태는 텅 이어 있어 생태 연못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네요. 물가 중앙에 생태섬을 만들고, 수심에 변화를 두어 수중·부유·수생식물들이 자랄 수 있게 정비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여름에는 이곳이 어떤 풍경으로 변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녹남봉 정상에서 만난 키 큰 녹나무들을 뒤로 하고 한 시간 남짓 걸으니 ‘하멜 일행 난파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포구에 닿았습니다. 편평한 너럭바위 한가운데에 마치 커다란 바구니 모양의 물통이 여럿 모여 있어 ‘무병장수 도구리’라는 전설을 품은 신도2리 해안은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운 좋게도 물질하는 해녀 어르신 곁을 지나는 남방큰돌고래 5마리를 만나는 횡재를 누렸습니다. 등지느러미와 머리의 일부만 수면 위로 잠깐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단순한 움직임이었지만, 처음 마주한 생명에 대한 경외감 때문인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답니다. 덕분에 조금은 지루해질 뻔했던 올레길의 중반이 훨씬 수월해졌지요.


지질공원 지질트레일과 겹치는 수월봉~엉알길~당산봉 구간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차귀도의 자태를 감상하는 재미가 남다른 곳입니다. 오름과 섬 모두 화산활동의 흔적을 떡시루 떡판처럼 층층이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길’이라는 뜻의 생이기정에는 가마우지가 남긴 배설물 때문에 절벽의 지층이 하얗게 물들어 있답니다.


종점을 코앞에 두고 포르륵 포르륵 야자나무 잎 사이를 날아다니는 붉은부리찌르레기를 만났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용수마을 방사탑과도 양팔 벌려 진한 포옹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돌고래를 만났던 순간의 흥분이 콩닥콩닥하네요. 마치 새봄의 문턱에서 뜻밖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처럼, 은은한 설렘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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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외갓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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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겨울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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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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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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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2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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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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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공원 지질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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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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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기정
DSC_2496.jpg 용수마을 방사탑
남방큰돌고래 DSC_2317.jpg 남방큰돌고래
물냉이 DSC_2378.jpg 물냉이
보리밥나무 DSC_2366.jpg 보리밥나무
붉은부리찌르레기 DSC_2336.jpg 붉은부리찌르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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