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콜린의 유명한 podcast 이야기
《 극우의 세상 》
지구촌은 극우의 세상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이탈리아의 조르자 말라니,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말레이, 네덜란드의 딕 스호프, 일본의 다카이치는 정권을 잡은 이들입니다.
이들 외에도 극우가 연립정부에 참여 혹은 그 영향력을 넓혀가는 추세입니다. 그 예로써, 폴란드,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독일이 있습니다.
이들은 민족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우파포퓰리즘과 극우성향을 띱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극우가 득세하게 되었을까요? 바로 경제적 양극화, 중동/아프리카 난민 문제, 그리고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의 반작용입니다.
《 프랑스의 조용한 레지스탕스 》
작년, 그러니까 25년 가을, 프랑스 podcaster 필립 콜린스는 900만 명의 애청자들과 함께 독일 남서부의 900년 된 거대한 성에 찾아갑니다.
때는 1944년 크리스마스, 성 안의 연회장에는 급작스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피해 파리에서 피신해 온 나치 부역 정권 핵심인물들이 모여 있습니다. " 왁자지껄 " 떠들고 여기저기서 건배를 외치며 술판이 벌어지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들 마음 한구석엔 불안함이 싹트고 있습니다. "혹시 나치의 파리 재탈환이 실패하면 어쩌지....?"
< podcast 방송 중인 필립 콜린스 >
{{ 이 성은 지그마링겐 성(Schloss Sigmaringen)이며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고성으로, 그 기원은 11세기(약 1077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성이 프랑스 근대사에서 언급되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치에 협조한 비시 프랑스 정권의 '마지막 망명지'라는 비극적이고도 기묘한 역할 때문입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8월 연합군이 파리를 해방하자 나치는 협력 정권의 수장인 필리프 페탱과 실권자 피에르 라발, 그리고 수천 명의 협력자들을 강제로 독일 남부의 이 성으로 이주시킵니다.
1944년 9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약 7개월간, 이 화려한 성은 프랑스 나치 협력자들의 임시 수도가 됩니다.
< 독일 남서부의 지그마링겐 성 >
이들은 성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장관을 임명하고 대사관을 운영하며 마치 정부가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독일군에 의해 성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통제된 사실상의 포로 상태였습니다.
1945년 4월, 연합군(특히 자유 프랑스군)이 성 근처까지 진격해 오자 이 유령 정부는 뿔뿔이 흩어졌고, 페탱은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 재판을 받게 됩니다. }}
< 1945년, 지그마링겐 성으로 들어가는 독일군들 >
이 Podcast에서는 1944년 성탄절로 돌아가서 그들끼리 웃고 떠들며 샴페인 잔을 부딪히는 떠들썩한 파티를 오디오로 재현합니다. 이들은 잠시 연합군에 의해 밀린 나치의 독일군이 다시 탱크로 파리를 점령하면 자신들도 파리로 복귀할 기대를 합니다.
바로 이 시기의 나치 부역정권의 종말(1944.8~1945.4)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에겐 수치스러운 잊힌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필립 콜린스는 podcast로 그 어두운 역사를 소환하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pidcaster가 됩니다. 이 '지그마링겐 성' 에피소드 다운로드 수가 무려 200만 회에 달했습니다.
그의 podcast, ' Facing Histiry'는 공존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총 다운로드 수가 무려 4천만 회를 넘겼거든요.
그의 podcast에서 진행한 2차 대전 시절 핵심 역사적 인물들의 재해석과 재평가는 프랑스 역사학계와 정치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podcast의 방송시점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시점과 겹치고 프랑스 극우 세력들의 힘이 점점 커질 때, 필립 콜린스는 자신이 제작한 이 'Facing history'가 애청자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가 프랑스 공화국의 정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 저는 2차 대전 시절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기억을 소환하고 싶었어요 ", 필립 콜린스가 1940-45년 사이 프랑스 나치 치하에서 활동한 프랑스 비밀결사대를 최근의 카페 인터뷰에서 언급한 말입니다.
50세의 필립 콜린스는 원래 유명 라디오 방송국 'France Inter'의 PD였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혁신가로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Facing History' 방송을 시작하고, 어느덧 4년이 흐르는 동안 만들어진 여러 편의 시리즈 방송들은 프랑스가 2차 대전동안 가졌던 양면적 모습, 즉 희생자와 부역자라는 미묘하고 복잡한 역사를 되돌아 보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Facing History'는 8-10시간 길이의 시리즈들로 구성되었고, 각 시리즈는 당시의 라디오 콘텐츠, 성우와 배우들이 재현한 편지들과 회고록, 그리고 12명가량의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해석들로 채워졌습니다. 불편한 주제와 정면돌파식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Facing History'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이 'Facing History'를 진행하면서 3권의 관련 서적, 3편의 TV 시리즈, 그리고 프랑스 최초의 유태인 수상 Leon Blum의 9시간 길이의 podcast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 Leon Blum 수상의 모습 >
Leon Blum은 나치 부역 정권이 프랑스에 들어서기 4년 전인 1936.6부터 1년간 프랑스를 이끌었던 총리였지요. 그는 오늘날 여름이면 프랑스를 텅텅 비게 만드는 바캉스 휴가의 전통을 낳은 유급휴가와 주 40시간 노동제도를 만든 개혁총리였습니다.
그런 그를 나치 부역정권은 너무도 싫어해서 자신들이 집권하자마자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보내버렸습니다. 이후 그는 수용소를 극적 탈출하고 전쟁이 끝난 46년부터 47년까지 전후 프랑스 복구에 힘썼습니다.
이런 시리즈물을 통해, 필립 콜린스는 역사학자들에게 새로운 사실들을 제공하면서 신뢰를 받게 됩니다.
2차 대전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인 앙리 루소는 자신도 필립의 podcast를 애청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 적어도 내게는, 필립이 역사 선생님이었어요 ", 앙리의 말입니다. 앙리 루소는 그의 podcast 중 3편에 등장합니다. " 필립 콜린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
그러나 필립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극우지도자 쟝 마리 르 펜이 프랑스-알제리 전투에서 알제리 사람들은 고문하였다는 기록물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여 관련 전문가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