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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샤나 Feb 15. 2020

'드센 여자'를 대하는 두 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셰익스피어는 1593~1594년경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썼다. 이 작품에는 두 자매가 나온다. 드세고 괄괄한 카타리나와 상냥한 비앙카. 아버지는 비앙카에게는 구혼자가 넘쳐나는 데 반해, 카타리나를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 고심한다. 그는 패트리치오라는 남자에게 그녀의 성미를 고쳐 놓으라고 부탁한다. 패트리치오는 난폭한 카타리나를 더 난폭하게 대하고, 이에 기가 꺾인 카타리나가 나중에는 비앙카보다도 얌전하고 조신한 아내가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다. 고등학생인 카타리나(캣)는 남자에 관심이 없으며, 학교에서 까칠하기로 으뜸이다. 반면 동생인 비앙카는 예쁘고 다정해 인기가 많다. 데이트를 하고 싶은 비앙카에게 아버지는 캣이 먼저 데이트를 해야 허락할 것이라고 못박는다. 비앙카와 만나고 싶어 애가 타는 카메론은 어딘지 불량스러워 보이는 패트릭이 캣을 꼬실 적임자라고 생각해 그에게 부탁하게 된다. 원작과 비슷한 결로 서사가 흘러가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카타리나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패트릭에 의해 성질이 고쳐지는 대상이었던 카타리나는 이 영화에서 주체적인 여성으로 우뚝 선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카타리나의 난폭한 성격은 누군가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쳐야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캣은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서, 남들이 하라는 것을 따르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나름의 이유로 학교에서 상냥하지 않은 여자애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가는 파티를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자신이 진학할 대학을 아버지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


 또 패트릭이 캣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다. 패트릭은 캣에게 난폭하게 대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여자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에게 끌린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다. 패트릭은 캣이 즐겨 찾는 바에 찾아가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기타, 책을 함께 알아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캣도 패트릭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을 고백하는 시를 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보다 훨씬 쌍뱡향적인 사랑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패트리치오와 카타리나는 부부가 됐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을 느껴서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는 서투르다. 서로의 '매력'이 아닌 누군가의 '강제력'으로 맺어진 인연이 과연 사랑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흔하디 흔한 하이틴 로맨스지만 자꾸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인간의 마음이란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위대한 극작가였지만 마음에 대한 일부 왜곡된 관점을 갖고 있었다. 여성을 평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아서였다. 물론 시대적 한계 탓이다. 그래서 감독은 원작에서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해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 셰익스피어의 극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꽤 훌륭한 리메이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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