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의 빠른 진보를 빌며
방향감각과 반사신경이 둔한 나는 늘 운전이 무서웠다.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다가 친구가 장난이랍시고 내 차를 꽝 하고 박을 때의 충격이 끔찍하게 싫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에서 한 바퀴 운전을 해볼 기회가 있었다. 내가 운전할 차례가 다가오자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우병우 아들처럼 코너링을 해야 하는데 핸들을 잘못 돌린 나는 친구들에게 너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원성을 들어야 했다.
나는 몇년 째 운전면허를 따라는 부모님의 말을 안 듣고 있다. 운전을 하게 된다면 툭하면 사고를 내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합의금으로 날릴 것 같다. 간혹 도로에서 보이는 화물차도 무섭다. 도로를 주시하면서 어떻게 깜빡이를 제때 킬 수 있을지, 주차는 또 어떻게 할지 골칫거리가 한두 개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운전만큼은 절대 안 배울 거라고 뻗대고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럴 때마다 똥고집 피운다고 나무라셨다.
핍박받던 내 똥고집이 광명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세계 주요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개발에 뛰어들면서다.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는 카네기멜론대학과 협력해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피츠버그 시에서 주행 테스트를 실시했다. 애플과 BMW, 인텔까지 자율주행차를 미래 먹거리로 여기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아예 자율주행차를 도시 전체에 보급하겠다고 공언했다. 싱가포르는 교통 체증이 극심하다 보니 교통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공들여왔다. 도심을 지하철로 촘촘히 연결한 후,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자율주행차로 이동해서 궁극적으로는 차를 살 필요 없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게 싱가포르의 구상이다.
정말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난 운전을 배울 필요도, 나아가 차를 살 필요도 없게 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차를 불러낼 수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굳이 차를 왜 구입하겠는가. 차는 이용할 때야 편하지 주차공간을 찾는 것도 번거롭고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소유가 아닌 공유로 나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편리해질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교통사고도 거의 없어질테니 많은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임에 분명하다.
물론 마음 한 켠에 불안은 있다. 갑자기 자율주행차가 먹통이 돼 내가 운전을 해야 한다면? 지난해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트럭을 들이받았던 것처럼 나도 그런 일을 겪으면 어쩌지? 이런 불안은 개발되는 기술에 항상 따라붙는다. 그래도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가 많지만 기계는 모든 경험을 진보의 기회로 만든다. 커제 9단과의 대국에서 2연승을 거둔 알파고 2.0은 이제 인간의 기보를 보지 않고도 학습한다. 주변에서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려면 10년은 더 있어야 하니 그냥 면허를 따라고 한다. 그래도 좀 더 버텨볼 생각이다. 기술의 진보는 늘 우리의 예측을 빗나간 순간에, 예상 못한 형태로 찾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