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생기는 '쪼'에 대하여
별이 무겁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 중 밤하늘을 보던 한 여행가가 생각하기를, 하늘에 별이 너무 많아서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단다. 박재희 작가의 <숲에서 다시 시작하다>에 나온 말이다. 그렇게 "별이 무겁다"는 내 속에 콕 박혔다. 밤하늘이 아름답다, 반짝인다, 별이 무수히 많다는 등 표현들을 단번에 시든 꽃처럼 느껴지게 하는 참신한 문장이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드라마 피디들은 늙은 배우들을 보며 '쪼'가 없다고 감탄한다. 쪼는 오랜 세월 연기를 해 온 연기자들이 보이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몸짓, 말투를 말하는 속어다. 50년 경력의 연기자에게 쪼가 생기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쪼가 없다는 건 그만큼 연기자들이 한 인물을 연기하는 순간마다 '했던 대로 해도 된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낸다는 것일 테다.
내가 쓴 글에도 쪼가 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은 내가 '~것이다'를 남발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며 더 쉽고 안전하게 가려고 쪼를 만들었다. 지난번 합격했던 글과 같은 스타일로, 스터디원들에게 비판받지 않았던 스타일로 글을 쓰려다 보니 과거의 나를 답습하고 쪼가 만들어진다. 이런 내 글이 진부하고 하품이 나오는 표현들로만 가득한 글로 느껴질까봐 두렵다.
얼마 전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 자소서를 읽고 "무난하고 기억에 남는 게 딱히 없다"는 평을 내렸다. 지원한 곳은 글자수 제한만 있는 통글 자소서를 요구했는데 항목이 있던 자소서를 긁어오니 맥락이 끊어진 점이 아쉽다고도 하셨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쓴 통글 자소서를 보여주셨다. 그 글도 무난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무난했다. 그들은 나처럼 인생의 스펙타클한 한 순간을 묘사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기자를 꿈꾸게 됐는지 잔잔한 물결처럼 풀어나갔다. 선생님께 물었다. "이 자소서는 제것과 달리 결정적인 순간이 없고 무난한 것 같아요. 자소서는 튀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요. 이것처럼 튀지 않아도 합격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한동한 멍해졌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신이 겪은 다사다난한 일을 강조하는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스펙타클한 일화를 서술하는 건 튀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지원자들의 방식과 비슷하게 가는 것이라고. 대다수의 지원자가 피나게 노력한 순간을 묘사하고 비슷한 극복기를 써낸다. 그런 자소서들 사이에서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기자관이 형성된 과정을 우직하게 설명하는 통글 자소서가 매력있을 수 있다. 충격적이었다. 어떻게든 튀어 보려고 고치고 또 고쳤던 자소서가 사실은 가장 무난하고 밋밋한 길로 가는 방법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작은 결론을 내렸다.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마구마구 읽으며. 자소서에서는 나를, 논술에서는 대상을 새롭게 표현하는 방식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선생님도 잘 쓴 자소서를 많이 읽는 게 정도라고 하셨다. 하루빨리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눈이 멀어 내가 쓰는 글이 합격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나는 일단 좋은 글을 쓰는 것을 목표에 두려 한다. 그 방법은 독자를 생각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수천 개의 비슷한 자소서를 읽을 인사팀과, 수천 개의 논술을 읽을 기자들을 말이다. 언시생의 쪼는 독자를 생각하면서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