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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하 Sep 23. 2022

7. 취미로 공부하기: 일본어

1단계 성공기

취미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다. 내 취미가 공부는 아니고, 가끔 공부를 취미로 삼을 때가 있을 뿐이다. 취미가 공부인 것과 공부가 취미인 것과의 차이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달리 대답할 방도는 없다.


아무튼 최근에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었다. 근 15여 년 전에 일본 오사카를 처음 다녀오고 나서 일본어를 잠깐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다시 도전하는 셈이다. 이번에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교재를 샀다는 것이다. 무려 1만 3천 원이라는 돈을 투자하였다. 여기에는 이번 결심이 전과는 다르다는 나름대로의 각오가 심겨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일본 여행을 좋아한다(가끔 전생에 나는 일본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정도로). 비행 거리, 먹을거리, 볼거리, 쇼핑거리 등을 본다면 내게 일본은 가장 선호되는 여행국가다. 특히 일본 특유의, 관광객을 상대로  일본인들의 친절함을 고려한다면 일본 여행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전에 있었던 일본 불매운동이 있기까지는. 불매운동이 시작되고 나서는  동안 일본 여행을 가지 못했다.  이후에는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들 일상에서 멀어졌다.


앞으로 언젠가는 그래도 일본을 다시 갈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때를 대비하여 일본어를 좀 공부해 보기로 한다.


지금은 스마트폰 안에 외국어 사전도 있고 번역기도 잘 갖추어져 있어 해외여행 시 언어로 인한 불편함은 거의 사라졌지만 2008년 경에는 사정이 달랐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던 시절에도 내가 외우고 있는 일본어 단어가 하나 있었다. 오미즈(水), 우리말로 물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당시 일본에서의 경험과히 충격적이었다. 어느  식당에 들렀다. 식당에서 가장 먼저  말은 '워러 플리즈'였다.


나: "워러 플리즈"

식당 종업원: "?"

나: "워터"

식당 종업원: "?"

친구: "워터, 와터"

식당 종업원: "?"

나: "워터도 못 알아듣네. 우리 발음이 문젠가?"


물 한 잔 마시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일본어를 못하고 그들은 영어를 못하니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한자로 물 수 자를 써서 보여줬던 것 같다. 물을 가져오면서 종업원이 일본어로 알려 주었다.


식당 종업원: "오미즈"

나: "오미즈" (발음을 따라 했다)


그 뒤로는 일본 식당에서 물을 못 마신 적은 없다. "오미즈"라는 단어 덕분에.

이렇게 나의 일본어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먼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워야 한다. 그런데 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가나 문자를 모두 정확하게 외워서 읽고 쓴다는 것에는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다 외었다고 생각이 들어도, 며칠 지나 다시 접하면 여전히 헷갈리기 일쑤였고, 그런 현산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런 경험을 몇 번 반복하다가 일본어 공부에 손을 놓게 되고 일본어 실력은 다시 제로로 돌아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 다시 일본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사실 '만년필'이다. 만년필과 일본어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만, 나름 대로의 사연은 있다.


내 취미'들' 중 하나가 만년필로 하는 필사이다. 작년부터 대하소설 하나를 골라 필사하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만년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아무래도 볼펜이나 중성펜보다는 만년필로 글씨를 쓸 때 오는 독특한 경험 때문이다. 만년필에게는 '친구'가 둘 있는데, 하나가 잉크이고 다른 하나가 종이다. 만년필을 취미로 시작하면서 만년필뿐만 아니라 잉크와 종이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같은 만년필이라 하더라도 어떤 잉크로 어떤 종이에 쓰느냐에 따라 필감, 잉크의 발색, 글자의 굵기 등이 완연히 달라진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종이를 사모았고, 그 양이 평생 동안 써도 충분할 것만 같은 양이 되었다.


평소 필사는 한다고 하지만 하루에 소비하는 양은 A4 기준 한 장 정도이다. 그래서 종이를 빨리 소비할 방법을 생각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만년필로 종이에 써가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부의 여러 주제 중 하나가 일본어가 된 것이다. 우선 1단계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우는 것이고, 2단계로 일본 여행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본 표현과 단어를 읽히는 것이다.


각설이 좀 길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교재를 사고 첫날부터 히라가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5년 전의 기억이 다 사라졌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물론 15년 전의 히리가라와 지금의 히라가나는 변한 것이 없기에 여전히 그 글자들은 어렵기만 했다.

아이우에오 あいうえお 

카키쿠케코 かきくけこ

사시스세소さしすせそ ...


하루하루 정성을 들여 글자를 외웠다. 그날 공부한 것을 뒤돌아 서면 자연스럽게 잊게 되지만, 공부에는 왕도가 없고 반복학습 외에는 다른 길도 없다. 그렇게 1주, 히라가나 외우기가 끝나고 가타카나 외우기에 도전했다. 역시난 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1주일 정도 후에 암기를 완료했다.


그러나 글자를 외우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50음도를 외워 잘 쓸 수 있다 하더라도 막상 단어나 문장을 읽으려면 한 세월이 걸린다. 이 또한 엄청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오하요 고자이마스. おはようございます.

이타 다키마스. いただきます.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요루시쿠 오네가이시마스. よろしくおねがいします.

고멘나사이. ごめんなさい.

지금은 아는 표현이 이 정도뿐이다.


일단 1단계는 완료한 셈이다. 이제 2단계 목표를 향해 정진해 나가려고 한다. 한 6개월 후, 내가 이런저런 일본어를 말할 수 있게 될까? 내 일본어 실력이 느는 만큼 A4 용지 소비량도 같이 늘어나겠지.


나는 오늘도 일본어 교재를 펼친다.


p.s. 이 글을 처음 쓴 지가 벌서 두 달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일본어 공부를 손 놓고 있었더니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내 머릿속에서 휘발되기 시작한다. 뭔가를 꾸준히 챙겨서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특히나 그 일이 공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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