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시시한 인생은 없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

by Celine
"인생의 가치는 말이야 다른 사람에서 내가 무엇을 받았는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뭘 주었는지로
정해지는 거야."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 중에서>



나는 영화보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한 번 감정이입이 되거나, Fill이 꽂히면(?) 그 영화가 생각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적어도 30번에서 50번 이상 무한 반복 관람하는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주로 집에서 IP TV나 넷플릭스에서 접하기도 하지만 꼭 극장의 대형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를 즐겨야 하는 것들은 늘 극장에서 관람한다. 나의 영화 취향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액션물에서부터 어린이 애니메이션까지 그날그날 나의 컨디션에 따라 선택하는 편이다. 나는 특히 일본 영화를 많이 본다. 잔잔하게 흐르는 극의 흐름과 그 속에서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을 나 스스로 생각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영화 중 '고다에다 히로카즈, 나카시마 테츠야'감독의 열혈 팬으로 그들이 제작한 영화는 모두 섭렵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일본 영화를 관람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그들은 영상 속에 늘 일본의 아름다움과 일본인들의 그 고유의 정서와 정신을 은유적으로 포장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러한 점만 고려한다면 나에겐 안성맞춤인 영화가 바로 고다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이다.


그의 영화 중 <아무도 모른다2004>은 단 한 번 관람 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아니 보지 않는다. 어른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비극적이고도 처절한 너무도 비현실적인 슬픔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실제 일본에서 1988년에 일어난 스가모 아이 방치 사건을 소재로, 고다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15년의 구상 끝에 만만의 준비를 마치고 영상화한 작품이다.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전 세계에서 많은 찬사를 받은 영화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일본 영화 중 30번-50번 이상 본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던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인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겨울과 봄 시리즈2014> 그리고 고다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2016>, <갈증2014>을 들 수 있다. 그중 가장 사랑하는 영화를 말하자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2016>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일본의 대표 여배우인 '니카타니 미키"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영화이다. 니카타니 미키는 우리나라 영화인 <역도산2006> 그리고 평생을 한 고려 여인을 사랑했던 일본 최고 다도 장인의 이야기 <리큐에게 물어라2013>, 우리에게 책으로도 잘 알려진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2017> 등 많은 작품에서 때로는 고혹적이고, 때로는 고급스럽고도 우아하며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니카타니 미키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다. 그녀의 사생활을 떠나 그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세련된 심플한 멋스러움과 향기가 나는 그녀의 얼굴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은 마치 팝아트를 연상시키듯 화려한 색상과 노래로 도입 부분이 매우 산만하게 시작된다. 마츠코라는 한 여인의 일생을 담은 영화로 가족과 소식이 없던 마츠코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몇십 년 만에 마츠코의 남동생이 누나 유골을 화장하여 아들(에이타- 모델 출신의 영화배우: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소설 마호로역전심부름센터 시리즈의 주인공ㅡ나의 최애장품이다)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마츠코의 남동생은 자신의 아들에게 말한다. "누나의 인생은 참 시시한 인생이었어" 시시한 인생이라.......나의 생각을 자극하는 저 대사. 세상에 시시한 인생이란 게 뭘 의미하는 거지? 인생과 삶에도 좋고 나쁨 또는 재미지거나 시시하거나 하는 그러한 기준이 있는 건가? 그런 것이 왜 있어야 하지?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이 부여된 자가 세상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누나 마츠코의 유골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남동생의 인생은 어떤 인생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의 인생도 지리멸멸 별 볼 일 없이 지구에 종족보존?만 하고 잠깐 이 세상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참으로 시시한 인생인 것일까? 수많은 생각을 던져준 한 마디였다.




어린 마츠코에게는 밖을 나갈 수 없는 여동생이 늘 집에 있다. 동생이 매우 아팠기 때문에 부모님 또한 동생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린 마츠코는 부모님이 자신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생이 가끔은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외롭고 힘들 때면 노래한다. "나는 어른이 되면 왕자님을 만나 이 곳을 떠날 거야."하고 말이다. 마츠코는 자신에게 관심 없는 가족들을 향해 보란 듯 집을 떠나고픈 소망이 있었던 듯 싶다. 어느 날 마츠코는 아빠와 함께 유랑극단의 코미디를 함께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계속 웃고 있지만, 늘 무뚝뚝했던 아빠는 웃지 못한다. 그러나 아빠의 애정이 늘 그리웠던 마츠코는 조금 전 유랑극단의 코미디언의 표정을 따라하며 아빠에게 웃음을 찾아준다. 이후 마츠코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긴다. 어렵고 당황하게 될 때마다 아빠에게 보여줬던 그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너무도 곱게 성인이 된 마츠코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무던히 살게 되지만, 그녀에게는 파란만장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 한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몸을 팔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자살 모습을 지켜봐야 했으며, 자신을 배신한 남성을 칼로 찔러 살해한 후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츠코를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야쿠자(중학교교사시절제자)위해 그녀는 남성과 도망치다 다리가 부러져 평생 쩔뚝대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버려지게 된 후 마츠코는 스스로 사회로부터 완전한 고립의 삶을 선택하여 살아간다. 그리고 완전한 폐인 되어 버린다. 그러던 어느 깊은 밤 방에 앉아 있던 마츠코는 갑자기 미친 듯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 아파트 벽에 글을 쓴다.

'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태어나서 죄송한 인생은 따로 있다. 아동 성범죄자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범, 사기꾼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려 가면을 쓴 마스크 피플들!!! 마츠코는 매 순간 자신의 인생을 거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나는 그녀를 순간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체온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녀는 살아있기에 따듯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온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마츠코는 집 앞에 흐르는 강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 강은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의 강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한다. 다시 살아야 한다.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교도소에서 만나 줄곧 친구로 지냈으나, 한동안 소식을 끊었던 친구의 명함을 두 손에 꼭 쥔 채 마츠코는 일어나 평생 불구가 되어버린 한쪽 다리를 쩔뚝대며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순간 마츠코를 늘 놀리던 동네 소년들이 재미로?던진 야구공이 마츠코를 향해 날아온다. 그리고 마츠코는 야구공에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게 된다. 이것은 너무도 허망한 죽음 아닌가? 마츠코의 조카는 얼굴도 모르는 고모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고모가 살았던 삶의 발길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그리고 허무하게 삶을 마친 고모의 삶에 대해 집 앞 노을 진 강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마츠코는 하늘을 향해 걸어간다. 젊은 시절 그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한 걸음, 한걸음. 그리고 그곳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동생을 다시 만난다. 동생과의 아주 간결한 대화는 인간 삶의 마지막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마츠코 : "다녀왔어"

여동생 : "응 어서 와".



영화 속에는 붉은색이 수시로 등장한다. 이 붉은색의 표현은 마츠코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면의 고통을 상징한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상처, 삶이 그녀에게 주었던 끝없는 고통, 그리고 마츠코가 세상을 사랑하고자 했던 절규의 소리 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감정온도가 있다. 마츠코에게 있어 삶의 온도는 그녀의 감정온도를 수시로 변하게 한다. 행복을 알릴 때는 노랑과 분홍색, 그녀가 움츠러 들 때는 하늘색 등의 차가운 계열의 색으로, 그녀에게 괴로움이 다가올 때는 늘 붉은색으로 하늘이 변화한다. 그래서 영화 속의 마츠코가 가지고 있는 감정 온도를 우리는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말이 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마츠코의 인생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았던 남동생은 자신의 누나 인생이 그저 한낮 웃음거리 조차도 되지 못하는 시시한 인생으로 비추어졌으나, 얼굴도 모르는 고모의 유품을 정리하며 자신의 고모가 걸어온 삶을 이해한 조카는 고모의 삶이 얼마나 슬픈 비극이었는지를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조금은 개방적?인 편이다.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나에게 매우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언니는 꼭 할리우드에서 사는 배우 같아!" 나는 누군가에 의해 나의 인생이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의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하고자 한다. 오늘 토론토에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입술 뚫어도 돼?" 그녀는 이미 귀의 피어싱만 해도 위치에 따라 다르게 몇 개가 있으며, 팔에 그려진 타투만 해도 몇 개가 된다. 그러면서 딸은 나에게 덧붙여 말한다. "엄마, 내 인생이고 내 몸이잖아! 내가 후회하지 않고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니야?" ,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 뭐를 못해주겠니?' 나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안돼!!!!! 엄마가 아프리카에서 사는 엄마였다면 그들의 문화가 그러니 너의 코, 입술, 배꼽까지 내가 직접 뚫어줬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프리카에서 사는 엄마가 아니야"라고 말해 버렸다.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 NO를 말한 나에게 딸은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알겠어, 그럼 내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 엄마 낼 또 전화할게" 그리고는 잠시 후 딸은 자신이 그린 그림 몇 장을 나에게 보내왔다. 그것은 딸이 나에게 사과의 의미로 보낸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실제 나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예쁜 얼굴에 입술을 뚫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러고보니 나는 그냥 엄마였다.헐리우드 엄마가 아닌 그냥 엄마) 사람은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몸으로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강해지는 법이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감정을 경험하라고 늘 말한다.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이 사회는 분명 맑고 푸른사회가 될 것이다. 마츠코는 외로움과 사랑의 고픔을 느꼈기에 사랑을 원하는 이들에게 한 없이 자신을 내어주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시시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다 소중한 시간들이며 존엄한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짜 삶이 아닐까? 그러나 삶을 선택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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