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옻이란 천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으며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 하여 사대부와 귀족층에서는 가구나 장례시 시신을 보관하는 관에 칠을 하기도 했다. 또한 더운 여름날엔 음식에 넣어 먹기도 했지만, 그 강한 독성으로 인해 몸이 견디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물성을 가진 옻으로 그림을 그린 장르가 바로 레커화(Lacquer Painting)이다.
Women in Forest, Alix Angele Marguerite Ayme(1894-1989), 150x200cm, 개인소장.
현재 우리 작가들도 레커화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의 전통적 레커화와 사뭇 다르다. 먼저 표현기법이 다르다. 우리에겐 추상적 표현(영성예술 등)을 하는 회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으나, 베트남의 레커화는 그림의 소재에 있어 농경 생활이나 자연 등 생활에 밀접한 장소를 소재를 표현하는 차이가 있다. 현대에 들어서 베트남의 작가들도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우리의 작가들과 같이 추상적 표현을 하는 데는 아직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 작가들이 사용하는 옻물감은 높은 가격이기에 작품 또한 그에 상응하는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으나 베트남의 레커화는 우리의 그림과는 다른 가격이다. 이것은 아마도 생활 물가지수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Lrrigation, Tran Van Can(1910-1994), 59x91cm, 1958, Museum of Fine Arts Hanoi.
베트남 레커화의 시작은 B.C 3-4세기에서 시작되었다. 가구를 장식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불교사찰 또는 가옥을 꾸미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레커화는 현재 실크스크린이나 유화와 같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에서 레커화가 현대 회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한 미술대학교수와 프랑스인 교수가 우연히 들른 공자의 사당을장식한 옻칠그림에 반하여 프랑스인 교수가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옻이란 성분을 사용하도록 권유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레커화는 베트남현대 회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옻이란 물성은 그 자체로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먼저 옻나무의 진액을 뺀 후 색상을 배합하여 물감을 만든다. 처음엔 검정, 갈색, 주홍색 세 가지의 물감을 사용하였으나 1930년대 들어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베트남 레커화의 르네상스라 말할 수 있는 시기라 할 수 있겠다.
Highland's ricegowers team, Hoang Tich Chu(1912-2003), 75x100cm, 1958, Museum of Fine Arts Hanoi.
현재 레커화는 베트남 전역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하노이 북서쪽 푸토(Pho Tho) 지역에서 많은 옻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하노이 지역에서 레커화가 발전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나무판 위에 옻칠을 한 천을 붙인 후 그 위에 옻진과 잘 개어진 흙을 바른다. 이것이 잘 마르면 같은 방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후 Sand Paper로 표면을 문지르고 다시 뜨거운 옻진을 붓고 다시 Sand Paper로 문지른다. 이 또한 여러 번 반복하는데 그 이유는 검은 표면이 매끈하고 반짝이게 하기 위함이다. 그림의 선은 뜨거운 레커로 그리고 선으로 표현된 곳에 여러 색을 몇 번에 걸쳐 덧칠한다. 이러한 까다롭고 수고스러움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레커화이다. 그러므로 레커화는 화가의 고된 노동(세심한 손길 등)과 시간의 산물인 것이다.
Bamboo, Tran Dinh Tho(1919-2011), 51x43cm, 1957, Museum of Fine Arts Hanoi.
삶이란 것이 녹녹지 않다. 때론 레커화가 탄생되는 과정과 같이 고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름답게 반짝이고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 강렬함에 매혹되어 때론 너무 멀리, 높은 곳만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러나 매 순간 최선을 다 할 수는 없다. 또한 그러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이란 한정되었기에 이왕이면 자아가 살아있으며 심장이 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한다. 나에게 그림이란 것이 있듯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함을 찾지 못했거나 없다거나, 설사 있다 하더라도 생활 속 소소한 행복이 많을수록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문득문득 행복하기!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큰 범주에서는 살아 있음을 느낄 장치가 필요하나, 살아가는 순간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깨어 있었으면 한다. 예컨대 스치는 바람, 지나가는 어린아이의 맑은 피부를 보며 보드라운 감정을 느끼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러한 사소한 것들 말이다. 그것이야 말로 감정이란 것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