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고유 명절은 고달프고 먼 거리의 여행이 되어버려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 해를 마치며 많은 이들이 종교를 떠나 기쁜 마음으로 분명 아무 약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설렘을 만들어 내는 날을 기다린다. 바로 크리스마스!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 속에는 따듯한 가정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이쁜 옷들이 소녀를 기다리고 있다. 성냥이 다 꺼져갈 때쯤 소녀는 목숨을 잃게 되는 아쉬운 동화를 어린 시절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바로 과자 선물세트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의 손은 머리 맡을 향하여 더듬더듬 선물을 찾았다. (나는 진짜 산타가 있다고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믿었다.)선물을 받았다고 들썩이며 아빠의 양반다리 사이에 앉아 아빠가 읽어 주시던 성냥팔이 소녀가 안타까워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과자는 입으로 들어가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밌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크리스마스는 평화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누구는 상품화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은 산타를 기다리는 세계의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과 소외계층에겐 더 많은 손길이 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나의 아프리카 딸에게 이번 달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낼 돈을 송금하지 않은 것이 이제야 기억이 났다. 다른 아이들은 선물을 다 받았을 텐데 이를 어쩌누 마음이 아파온다. 팔 수술 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내일 아침 일찍 후원회에 전화를 해야겠다.
<퇴폐미술전 포스터>
인류는 삶을 살아가며 80% 정도 전쟁을 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전쟁은 언제나 참혹하다. 그러한 전쟁 중 제2차 세계 대전에 일어난 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 전해 들었을 것이다.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한창 전쟁을 하고 있던 당시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참호(깊이 1m가 조금 넘는 구덩이)를 파지 않고 그냥 벌판에서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서로가 너무도 많은 무고한 죽음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적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바로 '참호'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군인들은 가족의 품이 그리웠고 평화가 그리웠다. 해 질 녘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다. 바로 독일군 장병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프랑스 군들도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다들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던 참호에서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나와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각자의 가족사진을 보여주었고, 축구 경기까지 했다고 한다. 비록 독일이 3:2로 이기기는 하였으나 이것은 오프 사이드였기 때문에 결국 승리는 각자의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영화와 소설로도 많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다음 날부터는 다시 적으로 돌아간 그들!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도 크리스마스가 평화의 기적을 계속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퇴폐미술전시회 모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당은 세계의 중심이 독일이라는 사상 아래 파시즘의 영향으로 국수주의적이며 조직적인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나치는 절대복종과 맹목적인 신뢰를 당요원들과 일반 대중에게 전달, 지시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나치당의 중심인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시대의 악마였던 히틀러가 직접 그린 그림이 아직 세상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히틀러의 수채화>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은 후부터 나치당의 선전부장이었던 괴뵐스(J. Gobbels)가 주축이 되어 문학을 시작으로 문화 예술분야에 전체 검열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미술계에도 이러한 영향을 받게 되며 자신들의 이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베를린이나 뮌헨의 미술대학 교수와 예술가들을 추방하거나 해임하였으며 그들의 저서는 모두 불태워져 버렸다. 그리고 공공 미술관에 소장된 현대미술 작품들은 대거 몰수되었다. 이것이 바로 나치당이 추구하였던 독일 미술 검열의 시작이다. 이후 히틀러는 1937년 국가사회주의의 독일은 '독일 미술'을 원한다고 강조하면서 서양 문화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미술을 가장 순수한 미술의 모범으로 보았고, 중세 독일의 정신세계를 하나의 이상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나치당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만을 최고의 그림으로 인정하였으며, 개인의 사상과 이념이나 철학이 들어간 작품은 모두 '퇴폐 미술'로 간주하였다. 퇴폐 미술가 속에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키르히너', '에밀 놀데', '뒤러', '칸딘스키', '파울 클레', '고흐', '샤갈', '마티스', '피카소'등의 수많은 세계 거장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치는 퇴폐 미술을 비판하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독일 미술의 순수주의를 직접 보여주기 위해 1937년 7월 뮌헨에 건립한 <독일 미술의 전당> 준공식을 맞추어 '위대한 독일 미술전'을 개최하였다.
<씨뿌리는 사람/오스카 마틴/oil on canvas/1937>, <칼렌베르크의 농부/아돌프 비쎌/oil on canvas/1939>
<4대요소--물,불,흙,공기/아돌프 치글러/ oil on canvas>
<씨 뿌리는 사람>은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독일 농부가 마치 거인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독일 농부와 일반인들의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함이며 독일이라는 씨를 세계에 뿌리며 땅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있다. <칼렌베르크의 농부가족>에서는 단란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 속에서 남편으로 가장으로써 아내는 어머니로써 표현하였으며 독일의 아이들은 후세에 전 세계를 지배할 주인공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나치의 이데올로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훈련, 훈육, 명예 등의 개념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작품인 <4대 요소>는 히틀러가 가장 사랑했던 애장품 중 하나라고 알려진 작품이다. 히틀러의 총통 관저에 걸려 있었으며 이 그림은 나치의 인종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치는 구릿빛 피부의 조각상 같은 남자 그리고 우윳빛 피부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자 등을 통해 건강하고 이상적인 육체를 가진 아리안 상을 창조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퇴폐미술전 관람 모습>
뮌헨에서 전시된 독일 미술전 앞에는 독일 미술전의 전시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술관 앞의 작고 낡은 2층 건물에 소위 말하는 '퇴폐 미술전'이 동시에 개최되었다. 전시작품은 액자가 없이 벽에 붙여 놓거나 바닥에 늘어놓았다. 그리고 작품 아래에는 작가를 조롱하는 해설 글이 붙어있었다. 관람객들은 낡고 좁은 계단을 통해 작품을 보아야 했다. 1층은 종교 모독, 2층은 유대인 작가 작품, 3층에는 독일 여성과 군인 그리고 농부를 모독하는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작품은 우리가 지금도 알고 있는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에밀놀데의 작품은 1052점이나 전시되었으며, 키르히너의 작품은 639점이나 전시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작품의 전시형태는 조금의 공간도 없이 그림을 다닥다닥 붙여 놓고 마치 그림을 조롱하는 듯 곳곳에 낙서를 하였다. 이는 대중의 혐오감과 증오심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둡고 좁은 공간 그리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표어 등을 배치함으로써 대중에게 일반 예술을 멀어지게 하려는 야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독일 미술전'과 '퇴폐 미술전'에는 모두 인물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위대한 독일 미술전'에서는 전통의 아카데미 고전주의와 자연모방에 충실한 사실주의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우수하고 진화된 인간상을 표현함으로써 순수한 독일 혈통을 강조한 반면 '퇴폐 미술전'에서는 고전적 규범에서 벗어난 왜곡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종족에 대한 가시적 이미지를 보여주며 유대인의 속성을 규정하고자 했다.
<퇴폐미술전 전시작품 비밀보관소 및 작품 분류작업모습>
퇴폐 미술전이 성공적?으로 마친 후 히틀러와 괴뵐스는 전시되었던 작품을 모두 소각하거나 조각 같은 경우 모두 파괴하라고 지시 하였다. 그러나 당시 퇴폐 미술전을 담당하고 있던 책임자는 작품을 소각하지 않고 뮌헨의 어느 아파트에 보관하였다. 이후 그는 죽기 전 퇴폐 미술전에 전시되었던 위대한 현대미술작품의 소재지를 알렸다. 작품은 1400여 점에 이르렀으며 이는 당시 추정가로1조 4천억 원에 달하는 금액의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이후 작품들의 원작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며 원작자에게 돌아가기도 하였으나 독일 정부와 유대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예술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의 생애-성당 제단에 맞춘 9폭의 그림 중 일부/에밀놀데/oil on canvas/1911-12/에밀놀데재단>
놀데의 그림은 내가 사랑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세상의 생명과 존엄 그리고 인간애와 평화를 바라는 그의 마음은 회화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나 나치에게는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고 놀데는 반역자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세계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해야 하는 날! 주여!(나는 종교가 없지만) 부디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앞으로 이러한 인간이 인간을 아프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해 주소서! 기도드립니다.
현재 미술은 그저 단순히 마음을 정화하거나 화가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사고가 되어 버렸다. 예술 즉 미술은 사람을 계몽, 선동, 선전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로써 제대로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문화, 예술은 우리의 사고를 더욱 확장시켜줄 것이며 나라를 이끄는 이들의 불협한 행동들을 제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그리고 새해에는 넓게는 세계 그리고 작게는 나의 삶의 더 여유 있었으면 한다. 내가 사고의 유연한 힘을 가질 만큼의 심적 여유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며 그렇게 만든 사회는 세계로 뻗어나가지 않을까?
올 한 해 세상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잘 지켜낸 나에게 오늘도 사랑해라 나를!!
쓰담쓰담!
잘했어. 잘 해냈어. 넌 참으로 소중한 존재야. 너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