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은빛 영혼들의 새로운 세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

by 짱고아빠

절반을 읽을 때까지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책은 처음이다. 아니 절반이 뭐야, 절반을 넘어 책은 끝을 향해가는데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이미지보다는 계속 머릿속에 "그래서 물고기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고, 에필로그에 이르러서야 안개가 걷혔다. 밀당, 반전, 마지막 한방이 있는 영화는 봤는데 와 마지막에 이렇게 훅을 날리는 책을 만나게 될 줄이야.(나 같은 답답함을 경험해 중간에 책을 덮은 이들이라면 에필로그를 먼저 읽는 걸 추천)


나는 아른아른하게 빛나는 어떤 의식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보고 있는 그 모든 대상, 내가 한 번도 진정으로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그 대상들의 질서가... 완전히 틀렸다는 의식이었다.(p.310)


'존재론'이란 철학 과목의 첫 번째 명제였다. 당신이 알고 있나?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당신이 보고 듣는 그것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그 옛날 장자가 시작했다고 한다. 나비의 꿈을 꾸고 나선 내가 나비에 관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 '호접몽'은 그 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변주 되어왔다. 소설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과학의 발달로 인한 메타버스에서.


책은 그때의 장자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말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 대상들의 질서가..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다니. 존재, 질서, 도덕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니가 알고 있는 거. 근데 그게 진짜 맞아?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p.318)


과학자들은 "긍정적 환상을 갖는 것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p.321)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고, 사실 난 좀 설렜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 모른다, 목표만 바라보고 달리는 터널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


목표만 바라보고 달리는 세상에서는 목표에 닿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갈라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이긴 자가 가지게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영원히 그를 보좌하거나 그의 자리를 탐내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세팅의 분명한 사실은 모두가 목표에 닿을 수는 없다. 1등은 영원히 한 명 혹은 소수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내가 살고 있는, 내가 믿고 있는 꽤 많은 세계를 전복시켰다. 내가 알고 있는 질서를 포기할 때 새로운 세상은 나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나는 존재하는 세계 밖의 세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질서 바깥의 새로운 삶에 대해 꿈꾸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피부 아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나와 훨씬 더 비슷한 내장기관이 있다는 것. 나와 똑같은 이온이 흐르고 있는 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류가 아니라는 것. 은빛 존재들 한 떼가 나를 향해 몰려오더니 잘하면 잡을 수도 있는 기차처럼 내 아래쪽에서 빠른 속도로 몰려다녔다. 나는 그 은빛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들은 갈라지면 나를 자기들 안으로 받아주었다. 수백 마리의 은빛 영혼들이 나를 감쌌다.(p.315)


내가 아는 것을 포기할 때, 또 다른 세계를 건너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세계를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수백 마리의 은빛 영혼들이 나를 감싸는 세계. 난 이 세계로 매우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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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리 밀러 저 / 곰출판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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