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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pr 01. 2023

우리 사람되기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박성훈 저

1. 나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는다. 치킨이 먹고 싶어도 포장으로 주문하고는 직접 가지러 가는 편이다. 옛날부터 그랬다. 일단 집에 모르는 사람이 찾아 오는 것이 달갑지 않다. 예전에는 현금으로만 라이더에게 결제를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싫었다. 최근 하늘 모르는 줄 모르고 치솟은 배달료는 내 이런 결정을 더 강화시키는 강화제가 되었다.


2. 여의도가 직장이고 그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처지라 배달 플랫폼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다. 요즘은 단건 배달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퇴근하고 치킨 한 마리 한강공원에 걸어서 배달하면 나름 아르바이트로 훌륭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사전 교육이 생각보다 많았고 무엇보다 배달 후기들을 몇 건 검색했을 때, 나는 라이더가 아니라 뚜벅이 혹은 따릉이일진대 식은 음식 가져온다고 타박 받거나 시간에 쫓기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3. 배달 알바를 해볼까 찾아보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었다. 배민, 쿠팡, 요기요 외에도 배달 중계 에이전시가 생각보다 많다는 거. 그리고 거리, 시간 요즘은 아주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배달료가 가늠할 수 조차 없게 복잡하다는 거.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때론 감정노동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이런 이들을 꽤 멋진 단어. 플랫폼 노동자라도 부르고 있다는 것도.


4. 라이더 유니언의 초대 위원장 박정훈 씨가 7년간의 라이더 생활, 그리고 지금의 라이더들의 사정에 대해 쓴 책이다. 예전에는 중국집 혹은 치킨집에 고용되던 배달원들이 건 바이 건 방식의 에이전시 시스템으로 바뀌며 그리고 코로나 시절 이 배달업이 꽤 흥행하고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라이더가 되었다. 오토바이 운전은 난이도가 꽤 높은 운전임에도 자전거 수준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덤벼들었고 높은 확률로 이들은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되었다.

오토바이가 가져오는 하드웨어적 문제 뿐 아니라 늘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배달 시스템 역시 안전에 큰 위협이 되었다. 휴대폰으로 조금이라도 고퀄의(가깝고 수수료가 큰) 배달을 빨리 낚아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으므로 한 손에는 핸들을 한 손엔 휴대폰을 잡고 운전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며 이는 라이더 본인 뿐 아니라 거리의 무법자로 낙인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만다. 거기다 고도화 된 시스템은 네비로 이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잠시 잠깐 쉬어갈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5. 예로부터 내려오는 배달업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직도 이들을 '배달'이라 부르며 반말이나 욕지기를 내뱉는 경우는 허다하고, 업주들조차 이들에게 화장실 한 칸 내어주지 않는다.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고급 아파트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사람이 택배 노동자에 배달노동자도 있다는 사실은 꽤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치킨을 사들고 가는 아빠는 주민용 엘리베이터, 치킨을 배달하는 노동자는 화물 엘리베이터.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할 때 자존심 같은 거 냉장고에 넣어두고 출근하다지만 배달까지 그럴 일인가.


6. 저자는 배달 공장을 멈추고 어떠한 위험요소가 있는지 함께 들어가서 살펴보자 권한다. 그의 말처럼 사실 이런 외주화에 따른 비인간화의 문제는 배달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무한 경쟁이라는, 플랫폼 어쩌고 하는 허울좋은 타이틀에 묻혀 노동 현장에서 사람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거의 모든 산업이 AI로 대체되고 유연화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에는 사람이 산다. 나와 우리,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살아간다. 사람 되기 어렵다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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