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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Mar 23. 2023

난세를 대하는 지식인의 책무

<한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 최봉수 저

'초한지'로 시작하여 '삼국지'로 망한 한나라. 맞다. 장기판에 쓰인 그 빨간 돌이 한나라다. 서양에 로마제국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그 광활한 대륙을 400년이나 통치한 한나라가 있었다. 물론 천년 제국 로마에 비해 그 역사가 짧지 않느냐 항변할 수 있지만, 로마도 큰 나라였지만 중국은 사이즈가 다르다. 서쪽으로는 티베트,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베트만, 동으로는 한반도에 이르는 이 나라를 우리는 중국 대륙이라 부른다. 이 넓디 넓은 땅을 단일국가가 지금처럼 통신이나 기술의 발달 없이 400년간 통치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소위 망탁조의로 통칭되는 한의 네 명의 역적.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의 행적을 따른다. 전한을 무너뜨린 왕망이 건국해 고작 15년을 다스린 신나라는 중국 왕조 변천사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그의 급진적 세제정책은 후대에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개혁의 기치를 든 패륜아. 입으로는 개혁을 말하지만 폭정을 일삼았던 폭군으로 역사는 그를 평가한다. 삼국지를 통해 우리게 익숙한 동탁과 조조, 사마의 중 동탁은 권력에 눈먼 두꺼비로 비유된다. 물론 조조와 사마의는 오늘날 재평가 되기도 한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는지 영웅들의 나열하는 시기가 난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는 이 망탁조의가 뛰놀던 시대, 하루아침에 나라가 망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시기에 삼국지를 통해 우리게 익숙한 당대 지식인들을 톱아본다.


후한 최고의 독설가 예형, 공자의 후손 공융, 조조의 양자였음에도 그를 무시한 하안 그리고 부패한 정권에 등진 죽림칠현의 이야기까지. 저자는 입바른 소리로 일관한 이들 지식인들이 누구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대쪽같은 이들이었음에도 자기 과신에 빠져 그 누구도 역사를 단 한 발짝도 나아가게 하지 못했음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아마 이들은 똑똑하고 옳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손가락질 했던 누구도 그 손가락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들은 그들을 짖는 개쯤으로 취급하고 몽둥이로 내어 쫓던지, 적당한 망나니의 손에 넘겼다. 물론 여의치 않으면 제 손에 피를 묻히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기가 걷던 길로 그렇게 천천히 나아갔다. 이들을 두고 훗날 절개를 지켰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은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말과 삶이 분리된 위선자들이었고, 멍청이들이었다고. 

이런 이들이 지식인이랍시고 이름을 날리던 시기에, 한나라는 망하고 말았다고.


오늘 이 나라에 지적질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많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뜨끔하면서도 서글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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