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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Dec 13. 2023

스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저

1. 나는 꽤 오래전부터 카공족이었으며, 취업을 하고 나서는 주말에 카일족으로 변했다. 어느 날 스벅에서 유현준 교수의 책을 보다 무릎을 쳤다. 집이란 건 방과 거실로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현관을 열면 침대가 보이는 원룸을 전전하는 청춘들은 집보다 오히려 카페가 편하고 숨 쉴 공간이라고. 딱 내가 그랬다. 몇 평 원룸에 있느니 커피값을 들이더라도 노트북 들고 카페에 있는 게 나았다. 

카페에 오래 앉아있다 보니 눈치라는 게 생겼다. 카공족 논란도 그때쯤 시작되었다. 이후 내 선택은 무조건 스벅이었다. 개인 카페나 점주님이 사장인 체인의 경우는 몇 시간 이후에 한 잔을 더 시키는 것도 민폐 같았다. 그랬다. 스벅은 가난한 내게 오래도록 앉아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

2. 스타벅스 재즈라는 장르가 있다. 스벅 회장 하워드 슐츠의 책 <온에어>라는 책에 스벅은 BGM도 수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오늘 들어갔던 스벅의 BGM을 기억하는지. 신기하게도 스벅의 BGM은 처음에는 들리다가 일이나 책, 대화에 집중하면 이내 사라진다. 새삼 스벅이 대단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3. 개인 카페 사장님들(특히 목사님)을 만나다 보면 그렇게 스벅과 커피 맛 비교를 많이 한다. 하나같이 스벅보다 좋은 원두를 쓰고, 특히 에스프레소를 어떻게 먹으면 기가 막힌다고. 그런데 미안하지만 알바가 바뀔 때마다(아침저녁으로) 바뀌는 커피 맛을 경험하는 건 커피 좋아하는 사람에게 꽤나 곤혹스러운 일이다. 또한 스벅에만 있는 초록과 나뭇빛 느낌이 어지간한 개인 카페에는 나지 않는다. 아마 보통의 사람은 평타를 치는 일정한 맛의 커피, 언제 가도 편안하고 예측 가능한 공간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스벅이다.

4. 여의도에는 스벅이 꽤 많고 이름도 비슷비슷하다. 퇴근 후 늘 가던 스벅에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고 노트북을 폈다. 곧 이어 음료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는데 카운터는 비어있었다. "혹시 여기가 여의도OO점이 아닌가요?" "아 고객님 여의도OO점은 길 건너 OO건물에 있는 지점입니다" 황급히 노트북을 접고 건너난 길 건너 스벅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내 커피도 한쪽 구석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5. 스벅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와 딸로 보이는 모녀가 있었고 뒤이어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이들이 맞은 편에 앉았다. 네 사람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곧 이어 목사님이라 불리는 남자가 등장했다. 목사님은 네 사람의  가운데 앉아 기도와 함께 설교 비슷한 걸 시작했다. 20분 정도 되었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뭐 그런 얘기였다. 그 중간에 젊은 남녀도 각각 소개해 주었는데 아마도 목사와 남녀도 처음 만나는 사이 같았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지금 어느 회사에서 일하느냐는 게 소개의 전부다. 그렇게 목사의 시간이 지난 뒤, 어른 셋은 빠져나갔고, 남은 두 남녀는 그들의 길을 어색하게 배웅했다. 잠깐의 멀뚱한 시간이 지난 뒤 둘은 서로에게 '수고하셨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는 일어나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눈이 꽤 슬퍼 보였다. 텅 비어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시켜놓은 아메리카노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6. 책은 이런 스벅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가족들끼리, 혹은 혼자 또 여러 관계의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스타벅스 일기. 이렇게 스벅에서 일하는(아 스텝이 아니라 카일족) 저자가 스벅 테이블 건너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 한편이 따땃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이 많아 질 때도 있다. 스타벅스가 처음 한국에 나타났을 때 귀족 음료였던 그 스벅이 우리 생활에 이렇게까지 깊숙이 들어왔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스타벅스는 그냥 카페의 하나로 불리기는 우리 삶에 너무 깊이 들어왔다.

7. 스벅을 이렇게 발견할 수도 있구나. 사실 읽으면서 괜스레 좋았다. 캐롤이 빵빵 나올 스벅에 옷을 좀 챙겨 입고 커피 한 잔 하러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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