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해낸다는 것 | 최재천 저
'실패를 해낸다는 것'이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실패는 당하는 것이지 기꺼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닌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내 삶도 그랬다. 태어나 거창한 실패를 이야기하자면 부끄럽지만 좋아하던 친구에게 차였던 일부터 시작해서 원하는 시험 점수를 받지 못해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일,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지 못한 일. 아니 오늘 아침 알람을 듣지 못한 일부터 시작해서, 오늘 저녁 운동에 가는 걸 실패한 일까지 언제나 내 삶은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로 어우러져 있었다. 멋진 말로 실패를 통해 배운다고 말하지만 나는 늘 실패를 통해 무너져 내렸다. 왜 그랬을까. 끊이지 않는 질문은 계속 머리에 맴돌았고 그것보다 조금 큰 성공에 이르러서야 그 실패의 잔상은 사라졌다. 실패는 그랬다. 늘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기꺼이 실패를 해내라고. 나아가 묻는다. 지금 당신의 성공의 기준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위계적이고 획일화 된 것은 아니냐고. 그랬다. 따지고 보면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늘 남들이 정해준 기준이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번듯한 결혼생활. 골 하면 좋은 것이고 페일 하면 그저 망한 것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성공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경제적 이득, 약간의 권력으로의 이동 이외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가?
생각해 보면 대학시절 나는 참 이 고민을 많이 했다. 남들과 다르고 싶었던 청춘은 늘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가려 했고, 낮은 곳(지금 생각하면 이 단어도 얼마나 건방진 단어인가!)으로만 가려 했다. 내가 사회복지를 시작한 이유, NGO에 몸담고 아프리카를 전전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렇게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내린 나의 결론도 저자와 같다. 인생은 그저 시행착오의 축적이다. 24시간을 우리는 늘 성공하고 실패하며 살아간다. 아니 이건 성공과 실패라 이름할 수도 없고 그저 우리에게 있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이 실패는 의무이자 권리이며, 자유라는 이름의 어떤 것이라고.
보통 하루 이틀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은 완독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그렇게 꼭꼭 씹어 삼켰다. 앞으로의 내 삶에 또 어떤 실패들이 다가올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실패 앞에 내가 또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리 책을 읽는다 해도 사실 자신은 없다. 하지만 조금은 더 실패에 유연해졌으면 좋겠다는 괜한 다짐을 한번 더 그저 해본다.
사르트르는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내린 선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머뭇거릴 것인가, 결정할 것인가, 주저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출발할 것인가. 이 선택은 당연하게도 실패라는 이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자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