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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짱고책방

자립을 배우는 아빠의 육아휴직기

아무래도 잘한 것 같아 | 신지훈 저

by 짱고아빠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육아휴직 아빠가 쓴 이야기라서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나도 육아휴직 아빠니까. 읽고 나니 꽤 나눌 이야기도 또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져서 꽤 마음이 몽글해졌다.


아이는 당연히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육아휴직 4개월째.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보낸다. 놀이 시간에는 책장과 장난감 서랍을 다 뒤집어 놓고, 밥시간에는 밥을 조물거리다 이내 있는 힘껏 던져버린다. 밤에는 안 자려고 몇 시간씩 땡강을 부리기도 하고, 산책을 가자면 제발 멈추어 달라는 아빠의 부탁이 무색하게 차도로 달려나간다. 이런 날이 반복되면 나도 모르게 피곤이 쌓인다. 육아 커뮤니티에서 오늘 아이에게 짜증 내지 않은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부모의 글을 보며 오늘 낸 짜증에 미안하고 또 어떤 날은 화를 내지 않은 스스로를 대견해 하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에게 언어는 아직 낯설고 세상은 신기하기만 하다. 저자의 말마따나 부모라는 이유로 내가 말하는 대로 아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 아이의 세상에 나의 기준을 들이대는 나였다.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건 어쩌면 내 편견이었고, 그 편견 속에서 나는 아이를 작은 어른처럼 대하고 있었다. 내가 화를 내면 아이는 꺄르르 웃는다. 다행히 이해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도 아빠의 표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나온 행동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고는 늘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 날은 아이를 재우면서 '아빠가 오늘 이런 이런 마음이었어. 화를 내서 미안해.'하며 용서를 빈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한 박자 늦게 반응하려 한다. 잠깐 멈춰서 바라본다. 그러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울음의 뜻, 가리키는 손끝에 닿은 호기심까지.

조금씩 세상을 배우는 인간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아직은 어리기에 이 수준이지만, 말을 하게 되고 고집이 생기고 행동이 생기면 아마 더 내 마음 같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통제를 내려놓고 함부로 부모가 되었다고 세상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우는 일을 해보려 한다.

그 깨달음이 육아휴직의 가장 큰 선물이다.


아이를 내어보낼 수 있을까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가정의 육아의 가장 큰 목적은 '자립'이었으면 좋겠다고.

결국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거기까지라고. 언젠가는 품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요즘 절감하고 있다.


14개월이 된 시점. 아빠의 복직을 앞두고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가지는 중이다. 처음에는 아빠가 함께 있지만 조금씩 복도로, 그리고 아예 아이를 두고 현관 밖으로 나선다. 선생님 품에서 발버둥 치는 아이를 던져두고 돌아서기 2주 차인데 매일 같이 그 발걸음이 쉽지 않다.

매일 같이 내 품에 있던 이 작은 생명을 내 손으로 떼어놓고 오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거구나, 함부로 자립이니 어쩌니 떠들던 내 입을 때리고야 말았다.

이것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언젠가 진짜로 세상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울음을 참고 아이를 떼어놓는 일이 곧 자립의 시작일 지도 모르니.

저자의 말처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그 시간을 겪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다.

아이를 대신 울어주지도, 대신 넘어져 주지도 못한다.

다만 세상과 부딪히는 순간마다 '괜찮아, 네가 해볼 수 있어'라고 믿어주고 이따금씩 심하게 넘어지만 한 번씩 손잡아 주는 것.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몫이다.



요즘 아이는 제법 잘 걷는다. 안 넘어지려고 용을 쓰고 차만 보면 달려들기 바쁘다.

이제는 넘어지면 아빠가 가르친 대로 손을 탁탁 털기도 하고 이내 앞으로 전진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뜨겁고, 또 서늘하다.

'이렇게 점점 멀어지는구나' 하는 생각과 '그래도 잘 크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동시에 든다.

그렇게 아이의 걸음은 이제 내 품보다 세상 쪽을 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언젠가 이 아이가 내 손을 놓고 세상으로 나아가겠지.

그때 진짜 멋있게 보내줘야지.


그래서 나도 지금부터라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하며 내가 품었던 불안과 후회, 그리고 이 작고 단단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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