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아닌 기회, 그리고 마음의 변화에 대하여
아프리카로 향하는 출장이 몇 번 있었습니다.
케냐, 우간다, 에스와티니, 잠비아…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나라들이지만 언제나 닮은 풍경 속에서 비슷한 온기를 마주하곤 했어요. 처음 보는 외국인이 낯설 법도 한데 그곳의 아이들은 언제나 환하게 웃었고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주었죠. 처음엔 뭔가 모르게 뭉클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감동조차도 익숙해졌습니다. 인천공항의 풍경이 비슷하듯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도 언젠가부터 비슷해지기 시작했죠.
한국전쟁 때 “기브미 더 쪼꼴렛”을 외치며 미군 장갑차를 따라다니던 한국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으실 지 모르겠어요. 저희가 만나는 아이들의 상황이 꼭 이 때의 상황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후원자님들을 모시고 현장을 가게 되면 반드시 후원자님들께 주의를 드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사탕이나 현금을 주지 마세요.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시간들이 쌓이며 이러한 사고도 제 편견으로 굳어져 버렸던 것 같아요.
그러던 2017년, 저는 아마도 평생을 잊지 못할 아이를 만납니다. 에티오피아의 새로 지은 학교의 개교식 세레머니를 하는 날, 환영식 한 가운데 당당히 서 있던 한 아이. 아마 이 아이는 학생 대표였던 것 같아요. 에티오피아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저희 마주한 아이는 준비된 인사말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 지어주신 이 학교 덕분에 공부할 수 있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익숙한 말들이었죠.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정중하고도 예의 바른 인사. 그런데 준비된 문장을 다 읽고 곱게 종이를 접어들고는 꺼낸 마지막 한 말에서 저는 굳어 버렸어요.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조금 미안하지만 지금은 여러분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계속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이 준비된 말이었는지 혹은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아이는 또렷하게 우리에게(혹은 저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당당하고 분명하게.
저는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누군가가 진심을 꺼낼 때만 나오는 망설임 없는 눈빛. 그 눈빛은 제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어요.
이 아이는 그저 도움을 받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회를 요청하는 사람이구나.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잖아요. “내가 너의 인생에 이미 개입하였다”고. 의도치 않았지만 저는 이미 이 아이의 인생에 이미 개입해버린 사람이었던 거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얘기했어요.
“삼촌이 한국가서 돈 많이 모아서 다시 올게.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이후 저는 후원자들과의 모임에서, 강의에서, 어떤 캠페인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자주 이 아이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어요.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말만 듣다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예요. 그런 아이를 돕는 게 후원이 이런 거라면 저도 해보고 싶네요.”
그 반응들을 보며 저는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후원은 단지 누군가의 삶을 돕는 일만이 아니라 오히려 돕는 사람의 마음에도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구나.
저는 이 마음의 변화를 ‘가난하지 않은 자의 변화’라고 부릅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옷이 낡지 않아도, 지갑에 여유가 있어도… 우리 모두는 매일 변화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후원이란 이 변화를 어쩌면 가장 쉽게 서로에게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그 가능성을을 열어주는 일이니까요.
이 사진은 지금도 제 책상 위를 지키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이후 코로나19가 찾아왔고 저는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에티오피아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