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포스터에서 시작된 나눔의 역사
제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낡은 포스터가 하나 있어요. 빛바랜 종이 위에 ‘김수구’라는 이름이 적혀 있고, 맨발의 아이가 초라한 재킷을 입고 서 있습니다. 움켜쥔 작은 손, 동그랗게 뜬 눈. 포스터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I am Kim, the beggar boy."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거리에서 살아가던 이 아이의 사진은 종군기자의 손에 찍혀,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한 가정에 도착했고 그 집 식탁 위에는 한국의 아이를 위한 빈 접시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가족들은 매일 저녁 식사 전,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그날 남은 동전을 그 접시에 모아주었고 그렇게 모인 동전이 한국으로 보내졌습니다.
월드비전의 시작이자 우리가 잘 아는 ‘사랑의 빵’이라 불리는 저금통 모금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한국전쟁을 계기로 국제 NGO들은 모금된 후원금으로 우리나라에 고아원과 미망인 시설을 세웠고 그 위에 지금의 복지시설과 제도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이 1945년 광복 이후 1999년까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원조 총액은 127억 달러라고 합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600억 달러, 70조원이 넘는 큰 금액이죠. 그렇게 도움 받던 나라는 1995년, 광복 50년이 되는 해에 한국은 드디어 세계은행의 원조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됩니다. 월드비전을 위시한 많은 NGO들이 이때를 계기로 한국을 수혜국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 즉 후원국으로 전환합니다. 지난 40년간 국제사회의 진 빚을 갚는 국가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거죠. 그리고 2009년 11월 25일에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24번째 회원국이 되어 공식적으로 원조하는 나라의 반열에 오릅니다. 이는 국제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바뀐 전세계에서 공인된 유일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2024년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39.4억 달러로, OECD DAC 32개 회원국 중 13위로 올라섭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괜찮은 국가, 즉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나도 너무 어려운데 왜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송스럽지만 저는 가끔 되묻습니다. 만약 1950년에 그 미국 가족이 포스터 속 아이를 보며 기도하며 마음을 모아주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어떤 모양이든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일은 해볼만한 아니 해야만 하는 일 아닐까요?
기억에 남는 편지가 하나 있어요. 후원아동이 매년 후원자님께 보내는 편지였는데 아이는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저도 후원자님 같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가 내 삶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그 마음이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는 아이의 고백. 이 아이는 정말로 좋은 사람으로 자랄겁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은 후원자님 또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거예요. 후원이라는 건 이런 것 같아요. 단순히 돈 얼마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삶을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이요. 이건 관계이자 기억이고 책임이며 나아가 삶의 방향이 조금은 달라지는 경험겁니다.
60년전의 김수구처럼, 제가 만난 그 에티오피아 아이처럼. 그리고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 누군가의 마음처럼. 한 사람의 결심은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흔들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사회복지사 혹은 NGO활동가로써 우리가 책임져야 할 진심이고 모금 아니 또 다른 변화의 출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