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윗집 사람들>
영화 <윗집 사람들>을 보기 전, 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깊은 곳을 건드릴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제목이나 스놉만 놓고 보면 층간소음에 대한 가벼운 어른 코미디쯤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그 오해를 뒤집는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키워드인 소음은 아파트에 갇힌 이들이 겪는 불편함이 아니라 어떤 시그널에 가깝다.
누군가 아직 살아 있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시그널.
아랫집에 사는 부부는 대화를 잊었다.
각자의 방, 각자의 음악, 각자의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그렇게 사랑이 사라진 자리가 의외로 평온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 둘에게도 문제는 있다. 윗집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소리들이 이 평온을 깨뜨린다는 것.
웃음소리, 몸이 부딪히는 소리, 숨이 가빠지는 소리.
정아는 그 소음을 불편해하면서도 동시에 부러워한다.
그녀는 용기 있게 "나는 부럽다"라고 하지만 이건 사실 많은 부부가 마음속으로 삼키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윗집 부부를 초대한 아랫집 부부의 식탁. 이 영화의 대부분은 식탁에서 벌어진다.
네 명의 인물, 몇 개의 와인잔, 그리고 점점 더 깊어지는 질문들.
처음엔 예의 바른 대화였고, 곧 농담이 되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돌아올 수 없는 질문이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안 만졌나,
왜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나,
이 관계는 안전한가 아니면 그냥 익숙한가.
영화는 이 질문들을 윤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대신 끝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윗집 사람들>은 19금 영화지만, 노출로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말로, 침묵으로, 눈빛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대사는 빠르고 정확하다.
너무 정확해서 웃다가도 멈칫하게 된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우리 같아서.
그래서 이 영화는 웃기지만 가볍지 않고, 대담하지만 선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정직하다.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은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의 파격적인 대화보다 더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우리는 지금 솔직한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정말 최선인가.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감정을 유예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이 영화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윗집 사람들> 어쩌면 아주 일상적인 부부의 이야기다.
너무 익숙해서 외면해왔던 질문을, 남의 집 이야기처럼 들려주며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
아마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은 그것일 것이다.
너무 익숙해진 관계들에게 다시 말을 건네게 만드는 것.
어느 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소음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면.
어쩌면 그건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 익숙해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