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리뷰
코로나 시절 지인짜 간만에 처음부터 정주행했던 애니 <귀멸의 칼날>
무한 시즌을 거듭하며 대체 몇십 년을 우려먹는 애니들만 보다가 이렇게 빨리 끝난다고? 시즌 2 이런 거 없어?라며 막을 내려버린 귀칼 시리즈는 그 명성에 걸맞게 애니와 영화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애니에 맞는 건 애니로, 극장에 맞는 시리즈는 영화로 풀어내는 재주가 대박이다. 이전 극장판 <무한 열차>도 눈물 없인 보기 힘들었는데.. 이번 편도 그렇다.)
<무한성편>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 최종 보스와의 결투를 앞둔 서브 보스와의 대결,
귀살대와 혈귀의 관계가 극으로 치닫는 곳에 있다.
혈귀의 수장 키부츠지 무잔은 귀살대의 핵심 전력을 자신의 본거지인 무한성으로 끌어들인다.
그곳은 도망칠 수 없는 공간이고,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무한의 장소다.
위와 아래가 사라지고, 동료들은 흩어지며, 귀살대원들은 각자의 싸움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그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도움은 늦고, 선택은 빠르며, 되돌릴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다.
무한성편이 흥미로운 지점은 그전에 쌓인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포기했다는 데 있다.
기존 시리즈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세계관이나 인물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영화는 곧바로 전투로 들어간다.
다시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상현 혈귀와 주(柱)들의 전투는 쉼 없이 이어지고, 공간은 계속해서 변형된다.
벽이 바닥이 되고, 천장이 갈라진다. 관객은 전투를 보는 위치에 있기보다는, 그 안을 지나가는 쪽에 가깝다.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귀살대와 함께 그 어지러운 공간을 통과하는 느낌에 가깝다.
최근 히어로 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빌런들에게도 서사를 허락한다는 점이다.
귀멸의 칼날도 마찬가지다. 아니 귀칼은 어쩌면 이를 위해 이야기를 시작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전투 중간중간 삽입되는 혈귀들의 과거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귀칼은 단순히 빌런을 쳐부수는 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왜 괴물이 되었는가, 어디에서 선택이 어긋났는가.
이 질문들은 전투 장면과 겹쳐지며, 관객들은 계속 불편한 위치에 선다.
응원과 연민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 귀칼이 만들어내는 희한한 균형이다.
따라서 탄지로와 주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히어로로 그려지지 않는다.
강하지만 완전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늘 대가를 치른다.
탄지로 역시 성장의 정점에 도달한 인물이 아니다. 아직 부족한 채로 전장에 놓여 있고, 그 미완성은 숨겨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탄지로의 전투는 통쾌함보다는 소모전에 가깝게 느껴진다.
탄지로와 친구들의 이들은 승리를 위한다기 보다 맡은 위치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그 싸움이 짠했다. 그리고 좋았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귀칼은 이미 완성된 이야기의 부분부분을 어느 곳은 TV로 어느 곳은 극장으로 영리하게 뽑아냈다.
무한성편도 그러하다. 연출과 작화, 움직임의 밀도는 TV판과 선을 긋는다.
화면을 크게 써야만 가능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완결성은 의도적으로 열린다. 모든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더 중요한 대결은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
한 편의 영화로만 보면 아쉬울 수 있지만 영화는 귀칼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 긴 서사의 일부로 보면 정확한 위치를 가진다.
이 영화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무한성편>은 어떤 메시지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조건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미화되지 않고, 포장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선택들.
누구도 안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상태.
이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것은 감동보다는 어떤 태도의 요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아직 너의 선택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
귀칼을 보고 인생 애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귀칼은 슬램덩크가 될 수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