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리뷰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늘 말을 고른다.
정확한 문장을 찾느라, 상처 주지 않는 표현을 찾느라, 혹은 그냥 겁이 나서.
그러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돌아서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는 사실보다, 그때의 나를 너무 쉽게 부정해버렸다는 것을.
그렇게 고백하지 못한 기억의 현타는 늘 조금 늦게 찾아온다.
집에 돌아오는 길, 시험이 끝난 뒤, 졸업식 사진을 다시 볼 때처럼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야 그 아련한 장면은 정확한 형태를 갖춘다.
눈빛, 거리, 말끝에 남아 있던 여백까지.
그때는 그렇게 다들 서툴렀다.
빙빙 돌려 말하고 농담 뒤에 숨었고 '지금은 아니야'라는 핑계로 마음을 미뤘다.
용기가 없었다기보다는 흔히 말하는 이 순간을, 친구를 잃을까 봐 무서웠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그 관계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그리고 언젠가 그때를 떠올리며 아쉬워한다.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유치했을까,
왜 그렇게 도망쳤을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널 좋아했던 그때의 내가 좋아'라는 문장에 그냥 민둥거리던 마음이 확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를 추억하면서도 지금도 그 친구가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말은 맞다. 널 좋아했던 그때의 내가 좋아.
잘해내지 못했지만,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고,
적어도 가볍게 대하지는 않았다.
아마 첫사랑이 유난히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다.
그 사랑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때의 내가 아직 세상을 계산하지 못했고,
손해와 이익을 재기 전에 마음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툴렀고, 그래서 진짜였다.
지금의 나는 훨씬 말을 잘한다.
상황을 읽고, 분위기를 조절하고,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관리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때만큼 솔직해지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사랑이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가 아니라,
지금 이불킥을 하는 내가 그때의 나를 너무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못했던 고백,
도망쳤던 뒷모습,
괜히 질척거렸던 철없던 장난들까지도
모두 한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식이었다면 그것만으로 사실 나 충분히 괜찮았던 거 아닐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던 그때의 나를.
널 좋아했던 그때의 내가 좋다.
그리고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그 시절은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대만 원작이 이야기 자체보다도 감정의 결이 먼저 남는 영화였다면
한국판 리메이크는 훨씬 이 감정을 눌러 담는다.
대만판이 조금은 유치하고, 때로는 과하게 솔직한 남자아이의 시선이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날것에 가깝게 밀어붙인다면
한국판은 계산하고 머뭇거리다 그 시기를 놓치고 만다.
그래서 대만판의 고백하지 못함은 미성숙함에서 비롯된 돌진에 가깝고,
한국판은 너무 조심스러워 아쉽기만 하다.(좀 더 다가가라고!!!!)
그치만 그래서 우리랑 더 닮아있는 것 같기는 하다.
대만판이 첫사랑이라는 감정의 폭발을 기록한 영화라면,
한국판은 첫사랑을 돌아보는 장면을 그리는 영화 같다.
썩 평점은 좋지 않으나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옛날 생각도 나고 :)
*솔직히 배우들은 연기는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