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나면 늘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by 짱고아빠


책을 덮고 나면 늘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였어?

그럴 때마다 나는 잠깐 말을 멈춘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이야기의 결말도 흐릿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던 순간만큼은 남아있다.

어디에서 읽었는지, 그때의 공기와 소리, 습도, 그때 팔이 어떻게 저렸는지 같은 것들.

요즘 들어 확실해진 건,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는 건 내용이 아니라 그런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거실 불을 최소한으로 줄여놓고 소파 한쪽에 앉아 책을 펼친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피곤한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잠들었지만, 나는 아직 아이와의 하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저렇게 했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딴 생각에 가득해서 읽은 문장은 다음 날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건 이제 막 잠든 아이의 체온의 따뜻함,

작은 불과 함께 집 안에 가득하던 적막,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괜히 미안해지던 마음이다.

예전에는 책에서 무엇을 얻었는지가 중요했다.

어떤 문장이 인상 깊었는지, 어떤 통찰이 있었는지, 남에게 설명할 수 있고 리뷰할 수 있어야 좋은 독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기준이 바뀌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책의 내용보다 책을 읽기 위해 앉은 그 자리가 더 오래 남는다.

가끔은 아이가 자다가 깨서 다시 안아야 할 때도 있다.

책은 펼쳐진 채로 쇼파에 대충 걸쳐 놓고, 나는 아이를 안고 다시 집 안을 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책은 멈춰 있지만, 독서는 끝나지 않는다.

금방 읽은 문장과 내 하루가 섞인다.

아이를 안고 서성이는 이 시간이 언젠가 글로 쓰이고 책 속 문장이 되어 떠오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아이를 토닥인다.

아침에 읽은 책도 마찬가지다.

막 커피가 아직 식지 않았고,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시간. 몇 페이지 읽지 못했는데 갑자기 깨어난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뒤뚱거리며 내게 온다.

으악 하다가도 아이를 보며 나도 배시시 웃는다.

그렇게 다가온 그 짧은 순간은 이상하게 나의 하루를 지탱해준다.

정말 그렇다. 이제는 무엇을 읽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게 책이 있다는 것과 내가 읽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독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어쩌면 기억의 축적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의 결국은 내가 무얼 배웠느냐도 있지만, 나를 어떤 사람이 되게 했느냐도 일지도 모르겠다.

짱고가 옆에서 느릿하게 몸을 말고 잠들어 있던 오후,

아이가 처음으로 낮잠을 길게 자준 날,

그럴때 괜히 들떠 책을 펼쳤던 순간들.

그때의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늘 책을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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