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마지막 장까지 갔다. 재미있든 없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책을 덮을 때까지가 예의라고 생각했다. 읽는다는 건 성실함의 다른 이름 같았고, 완독은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증명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책갈피는 중간쯤에서 멈추고, 다시 펼치지 않은 채 며칠이 흐른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책을 다른 칸으로 옮긴다. 아직 읽는 중인 책이 아니라 읽다 만 책의 자리로.
요즘 내가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들은 공통점은 너무 열심히 말한다는 거다. 너무 설명이 많고, 친절하고, 이게 정답이라고 소리지른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당신은 이렇게 변할 수 있고, 이렇게 생각해야 하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심지어 성공할거라고 장담도 한다.)
나는 그런 문장들 앞에서 자주 책을 덮는다. 그 말들이 틀렸다기 보다 지금의 내가 듣기에는 너무 귀가 아파서다.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더 이렇게 된 것 같다. 확신에 찬 문장에 쉽게 지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일이 물음표다보니 누군가가 자꾸만 단정짓는 그 결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밤중에 우는 아이를 안고 집안 여기저기를 서성이다 보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삶을 너무 쉽게 요약하거나 결정지어 버리는 문장 앞에서는 마음이 먼저 물러선다.
비슷하긴 한데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내가 사라진다는 느낌이다
책이 너무 완벽해서 독자가 들어갈 틈이 없을 때 나는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문장은 잘 쓰였고, 논리는 매끄럽고, 구조는 흠잡을 데 없는데 이상하게 숨이 막힌다.
그럴 때 나는 깨닫는다. 아, 이 책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리는 책, 내 경험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책은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
반대로 끝까지 읽게 되는 책들은 어딘가 숨쉴 구멍, 책을 잠깐 덮고 내가 따라가거나 반박할 여지가 있다. 여백이 많고 가끔은 결론보다는 내 생각을 묻는다. 그런 책을 읽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내게 무언가를 자꾸 쓰게 된다.
아이가 처음으로 웃던 날, 이유 없이 지쳤던 오후, 언젠가 짱고와 함께 뒹굴거리던 저녁 같은 장면들이 문장 사이로 스며든다.
그렇다. 내게 독서는 정보가 아니라 대화다. 그러고 보면 내가 늘 외롭지 않았던 이유중에 하나도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최근에 내게 주어지는 책들은 다들 너무 바쁘다.
독자를 설득하느라, 가르치느라, 앞서 가느라 숨을 고를 시간이 없다.
사실 나는 이제 책에게서 무엇을 얻고 싶다기보다, 책과 함께 잠시 머물고 싶다.
아이가 잠든 뒤의 짧은 시간, 세상이 조금 느려지는 그 틈에 책을 펼친다.
그 시간에 필요한 건 답이 아니라 나와 같은 속도로 걸어주는 문장, 나를 이해하고 쓰다듬어 주는 글이다.
그래서 이제는 읽다 만 책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끝까지 읽지 못했다는 건, 내가 게을러졌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복직 이후 더 명확해졌다. 이제 나는 모든 책을 품을 수 있는 독자가 아니다.
물론 지금 접어둔 책들 중 언젠가 다시 꺼내 읽게 될 책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내 마음이 바뀌면, 그때는 이 책의 문장들이 다르게 들릴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독서는 늘 그랬다. 책이 변하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이 변한다.
요즘 내가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들도 그렇다.
그 책들이 틀려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와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
늘 읽기에 열심이었던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조금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