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이유는 처음으로 이 공간에서 여러분의 지갑을 열어주십사 하는 긴 편지를 쓰기 위함입니다.)
몇 번 소개했다시피 저는 월드비전이라는 NGO에서 근무하는 활동가입니다.
15년째 회사 다니며 이런 일, 저런 일 다 해봤지만 제 공간에 이런저런 사진은 올린 적이 많지만 '저 이런 일해요'하며 제 일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이렇게 해야 돈 벌어요'로 획일화 되어가고 있는 블로그신에 잔잔한 돌을 던지는..(쿨럭)
지인들과 비행기 썰을 풀면 높은 확률로 저를 부러워하는 이들을 만납니다.
하긴 평생 한 번가기도 힘든 아프리카에 4번이나 다녀왔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만 제가 경험한 아프리카는 그렇게 부러워할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 갔을 때 처음 소대장이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그렇죠. 지구 반대편, 우리가 TV로만 보아오던 그 땅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와는 조금 많이 다른 모습으로요.
2016 에스와티니(스와질랜드) | 당신은 에이즈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저는 2016년 지금은 에스와티니로 국호가 변경된 스와질랜드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을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부른다는 말에 사실 살짝 기대도 했습니다. 물론 태어나 처음 타본 경비행기 아래의 풍경은 잊기 힘들 정도로 환상적이었지만 그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꽤 많은 아이를 만났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이가 이 아이입니다.
에스와티니는 성인의 26%가 에이즈(HIDS) 환자인, 성인 4명 중 1명은 에이즈 환자인 국가입니다. 전 세계에서 에이즈 환자가 가장 많은 나라기도 하죠. 21년에는 평균수명이 36세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나라로 기록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본인도 HIDS 보균자로 태어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아! 왜 그런데 아이를 낳냐고요? 부모도 스스로 에이즈 환자라는 걸 모르거든요...) 이 아이도 마찬가지였죠.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갓난아이 일 때 모두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아이가 약을 받기 위해 한 주에 한 번씩 3-4시간 걸리는 보건소까지 할머니와 걸어와야 한다는 것이죠. 한주치 약을 받고 약간의 검사를 받기 위해 걸리는 시간 왕복 5시간. 심지어 이 약은 에이즈를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더 발전하는 걸 막아주는 약입니다. 다시 말해 이 약이 없으면 이 아이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라는 거죠.
이마저도 아이가 어릴 땐 괜찮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집에 있는 것보다 보건소에 와서 선생님도 만나고 그림도 그리는 게 좋으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며 아이가 죽음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자 조금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이렇게 죽어야 하는 거지?'
아이의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때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건 연명치료가 아니라 심리치료가 되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아직도 에스와티니에는 많습니다. 아이는 우리가 선물해 준 축구공과 문구류, 사탕을 물고 처음으로 우리에게 웃어 주었습니다.
2017 에티오피아 | 공부가 하고 싶어요
인생 사진, 2017년 저는 에티오피아에서 제 모든 강의자료의 배경이 되는, 이렇게 밝은 아이들을 또 찍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사진을 건졌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이 아이들 뒤의 공간은 오른쪽에 있는 텅 빈 교실이었습니다. 저도 제 눈을 의심했지만 이곳은 2017년에 저희가 새 건물을 지어주기 전까지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고, 이 건물은 흙과 동물의 배설물을 섞어 만든 벽입니다. 예전에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벽을 만들었다지요 아마.
저희는 이 학교에 새 건물을 지었습니다. 물론 1동 밖에 짓지 못해서 고학년은 새 건물에서, 저학년은 저 건물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웃고 있었어요. 여러모로 참, 아이러니한 시간.
어쨌거나 저는 이곳에서 아마 평생을 잊지 못할 얼굴을 만납니다.
저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어른들이 곧잘 하던 이야기 중 미군 버스가 지나가면 우리나라 아이들이 '기브미더쪼꼴렛'이라고 외치며 그 트럭을 쫄래쫄래 쫓아다녔다는 얘기가 있어요. 많은 현장은 아니지만 저도 몇 개의 아프리카 혹은 동남아시아 사업장을 다니며 그런 친구들을 실제로 만났습니다. 방문 사전 OT 자료에 '아이들에게 사탕을 꺼내주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 표정 보이시나요? 당당하고 기품 있고. 아이는 우리가 지어준 학교의 학생 대표였습니다. 저희를 맞이하기 위해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대기 중이었어요. 그리고 준비된 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아이는 꽤 또박또박하게 자신의 꿈과 우리의 도움에 대해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와 카메라를 든 제 옆의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떨리지 않냐고? 아이는 싱긋 웃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자기는 커서 그 꿈을 이루고 싶다고, 지금은 좀 미안하지만 니가 나를 좀 더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었어요.
아이야,
그건 전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그건 삼촌이 하는 일이고,
삼촌이 한국 가서 너 도울 좋은 사람들 더 많이 많이 찾을게
그리고 꼭 다시 올게
아이를 보고 있자니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네 사진을 한번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고 아이는 흔쾌히 저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이 약속을 지키는 중입니다.
2023 우간다 | 당신의 삶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코로나로 한동안 아프리카에 가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이미 가 있었는데, 쉽게 기회가 오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2023년 연말 저는 우간다에 가게 됩니다. 후원자님들을 모시고 떠났던 지난 일정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캠페인 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일정이었어요.
제가 방문한 곳은 정확히는 우간다 북쪽에 위치한 '임베피'라 이름하는 남수단 내전을 피해 내려온 사람들이 정착한 난민촌이었습니다. 남수단은 2011년 북부 수단과의 내전을 끝내고 독립을 선포했지만 2013년부터 시작된 독재를 계기로 또다시 종족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우간다에는 남수단 난민 67만 명이 유입되어 세계에서 3번째로 난민이 많은(1위는 터키, 2위는 파키스탄) 국가가 되었습니다. 현재 우간다 내 전체 난민은 158만 명, 이중 남수단 국적이 56%를 차지하며 대 다수가 여자와 아동이라고 합니다.
월드비전은 2020년부터 "꿈엽서그리기대회"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꿈을 그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도 전달하는 캠페인인데요, 단순한 그림 대회를 넘어 매년 아프리카의 1국가에서도 함께 대회를 진행하고, 양국의 아이들의 그림을 교환(우리나라 아이들의 우수작품 3점은 현지 학교에 벽화로 그리는)하는 문화교류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2023년 대회의 주제가 '평화'였고 그래서 저희는 임베피 난민촌을 우리와 함께하는 평화의 마을로 선택합니다.
아이들과 아이들이 그린 벽화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수도 캄팔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날아와(육로로 오면 8시간이라네요;;) 그곳에서 또 2시간여를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보다 조금 더 먼저 만난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물웅덩이를 만났습니다. 말이 물웅덩이지 작은 개울 같았는데요(어른 무릎까지 잠기는)입니다. 와 저걸 어떻게 지나가지 했는데, 지나더라고요. 아 이 사람들은 못하는 게 없구나. 이 못하는 게 없는 사람들을 잠깐이지만 만났습니다. UNHCR을 필두로, 월드비전, 옥스팜, 세이브더칠드런 등 국제구호기구들이 모여있는 난민 본부에 잠깐 들렀어요. 사실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말이 난민본부지 그냥 컨테이너 몇 개가 전부였어요.
40년 전 할머니 집에서 보던 화장실, 손 씻는 물도 빗물을 받아둔 탱크를 열어주더라고요.(아니 이게 어떻게 모은 물일 텐데 이걸 어떻게 써!!)
전기는 언제 끊길지 모르고, 와이파이는 언감생심인. 하긴 난민촌이라는 게 임시시설이니 모든 게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10년째, 아니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이곳에 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던 때부터 이곳에서 함께 있어준 사람들.
여기서 고생한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닐 텐데 미국에서, 호주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편한 삶도, 가족도, 친구도, 연봉도 모두 뒤로하고 이곳에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때론 가르치고, 때론 싸우기도 하며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사람들. 살게 하는 사람들.
저는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월 3만 원, 요즘은 치킨 한 마리 값인 그 작지만 큰 금액이 아이들의 약이 되고, 책이 되고, 삶이 됩니다.
아래 영상은 제 동료들의 이야기입니다.(저도 나와요 하하하하;;)
행여 이런 일에 관심이 있으셨거나,
예전부터 돈 벌면 꼭 후원해야지라고 생각하셨던 분들
아니면 어디 후원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도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작은 요청을 드립니다.
책으로 콘텐츠를 만들며 가장 리뷰하기 어려운 책이 '경제적 자유', '돈 벌기'에 관한 책이었어요.
좋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져서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 인플루언서가 되어 모두의 관심 속에 살아가는 화려한 삶.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누군가를 돕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돈 많이 벌시면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 지어주세요. 우물도 하나 파 주시고요.
제가 약속하고 책임지고 한번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작은 실천 한번 해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