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행성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남종영 저
프로야구 삼성 팬들을 긁는 말이 있다.
‘라팍런’.
라이온즈 파크 외야가 짧아서 다른 구장에서는 뜬공으로 끝날 타구가 여기서는 홈런이 된다는 농담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농담을 아주 진지하게 뒤집는다.
문제는 구장이 아니라 기온이라고.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의 더운 공기, 기후 위기로 달라진 조건이 공의 비거리를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다.
웃자고 던진 말을 다큐로 받는 것도 모자라 이왜진이 되어버린 기후 위기의 실상.
이 책은 이렇게, 일상의 사소한 농담 하나가 진짜로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들려주며 우리를 끌고 간다.
<엉망진창 행성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는 최신 기후 이슈를 다루지만 방식은 독특하다.
다른 곳에서 늘 보이는 숫자 대신 에피소드는 사건 파일 형식으로
인간뿐 아니라 닭, 북극곰, 명태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제보자이자 증인으로 등장한다.
북극의 바다얼음이 줄어들며 사냥터를 잃은 북극곰, 수온 상승으로 자취를 감춘 명태, 서늘한 기후를 잃어버린 사과까지.
이들은 모두 인간의 편리함이 남긴 흔적 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1979년 이후 매년 제주도 42개 면적에 해당하는 북극의 바다얼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사건 개요로 시작하는 북극곰의 다이어트 이야기.
얼핏 가볍게 들리지만 읽다 보면 저자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가 얼마나 쉬운 이야기들을 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들려줘야 했던 기후 위기의 진짜 문제는
이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젠 우리의 식탁, 우리의 동네,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나가가 기후 위기를 단순한 자연재해나 과학 문제로 축소하지 않는다.
투발루가 그렇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나라.
하지만 저자는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그 비극은 기후 때문이기만 한가.
산업도 자원도 없는 나라, 오래전부터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
그리고 ‘2050년 투발루 소멸’이라는 자극적인 이미지 소비.
여기에는 기후 위기 위에 덧씌워진 불평등한 자본 구조와 정치의 문제는 가뜩이나 가라앉는 투발루를 소멸로 몰아가고 있다.
그린워싱 사례도 마찬가지다.
‘저탄소 소’를 내세운 육류 기업의 광고는 어쩌면 친환경의 탈을 쓴 기만에 가깝다.
스파 브랜드가 내세우는 재활용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러한 기만은 재생 에너지조차 피해 가기 힘들다.
풍력 발전소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는 순록과 원주민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쉽게 ‘옳다’고 말해온 선택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6도 상승했다고 한다.
1.5도를 넘기지 말자고 세계가 한 약속은 이미 깨졌고, 티핑 포인트는 넘어섰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멸망뿐일까.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과도한 비관도, 근거 없는 낙관도 경계한다.
인류는 과거 더 뜨거운 지구에서도 살아남았고, 문제는 ‘끝’이 아니라 ‘어떻게 적응하고 전환할 것인가’에 있다.
에필로그에 그려진 2100년의 세계는 암울하지만 동시에 희미한 가능성을 남긴다.
기술 중심의 해결이 아니라 생태계 복원과 연대, 가난한 나라와 비인간 존재의 권리를 먼저 고려하는 느린 전환.
그 변화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기후 위기를 이해하는 힘, 즉 기후 문해력은 숫자를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구조를 읽고 타인의 자리에 서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엉망진창인 행성 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그 엉망진창 속에서 우리는 어떤 편에 설 것인가.
북극곰의 파업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은 공감일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보라.
우리가 웃고 넘겼던 말들 뒤에 어떤 온도가 숨어 있는지, 어제 지나친 나의 발걸음 아래로 어떤 생이 밀려나고 있는지..
지금 이 행성의 조사반이 되어야 할 차례는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해 쓰인 픽션이지만, 기후 위기의 구조와 윤리를 다루는 방식이 정교해 어른이 읽어도 전혀 가볍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청소년 환경 소설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충분히 유효한 청소년 추천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