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독서 | 김영란 저
김영란 전 대법관이 쓴 <인생 독서>는 창비에서 나온 얇고 가벼운 ‘교양 100그램’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두꺼운 책, 큰 책만 보다 일단 책을 집어 드는 것 자체가 부담이 없다. 하지만 이 작은 책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들은 그가 왜 평생 ‘쓸모없는 공부’에 매달렸는지를 조근조근 우리에게 들려준다.
김 전 대법관은 법률을 다루며 살았지만, 판결문에는 도움이 안 되는 시와 소설을 주로 읽었다고 고백한다. 시나 소설의 아름다운 문장은 감동을 줄 뿐 판결문을 쓰는 데는 무용했고, “문학 작품을 판결문에 인용하는 ‘파격’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시력이 나빠질 때까지 독서를 멈추지 않았고 끝내 이를 포기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김영란에게 독서는 “나 자신을 찾는 공부”였다. 그는 어린 시절 책 읽기가 사고의 틀을 형성해 주었고, 사춘기에는 자신의 한계를 일깨워 줬으며 성인이 된 뒤에는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독서가 직업적 성공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그 자체로 자기를 닦는 과정이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그는 책을 통해 세상을 납득하는 도구를 얻었고 상처를 치유했으며, 책을 통해 “경의를 배웠다”고 말했다. 이런 고백은 독서가 추상적인 교양이나 단순한 취마가 아니라 그의 삶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의미를 지녔는지 보여준다.
<인생 독서>의 중심 키워드는 ‘쓸모없는 공부’다. 그는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독서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줬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독서를 “돈을 버는 일이 아니기에 쓸모없다”고 표현하면서도, 그 무용한 공부가 오히려 자신을 치유하고 성찰하게 했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행위는 반복적인 명상이나 수행과도 같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음을 가다듬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독서는 나에게 수행”이라는 그의 고백도 제법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작가는 3대에 걸친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면서 루이자 메이 올컷과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싱, 마거릿 애트우드,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커트 보네거트, 안데르센 등 다양한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내면을 비춰 보인다.
그는 이들 책을 통해 세계의 불의를 발견하고, 상상력이 어떻게 한계를 뛰어넘는지를 체험한다.
책은 추억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서가 그의 인간적 품성과 공감 능력을 어떻게 길러주었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TV가 없던 어린 시절 책만이 유일한 놀이터였던 그는 책을 늘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틈만 나면 읽었고 여행에 가져갈 책을 옷보다 더 신중하게 고를 만큼 열혈 독서가였다고 한다.
그리고 책은 슬플 때마다 위로가 되었고, 글을 쓸 때 적확한 문장과 표현을 찾는 데 길잡이가 되었으며 책을 통해 공정함과 공감을 배우면서 어쩌면 판결에 더욱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이런 개인적 기억과 독서 경험의 교차는 <인생 독서>를 단순한 독서 목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성장 기록으로 만든다.
독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결국 “독서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귀결된다. 그는 법률가로서, 사회적 인물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끝없는 기대와 압박 속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책을 읽으며 자신을 찾았다. 그는 믿었다. 독서는 세상 기준으로는 보상이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내적 근육을 키워준다고.
짧은 책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인생 독서>는 무겁지 않게 읽히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짧아서 그런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작가의 생애가 포개져 있는 느낌이다. 책 속에는 삶의 기쁨과 상처, 성장과 후회가 스며 있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것이 그 자체로 저를 닦는 것”이라는 진심 어린 고백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독서 경험을 떠올릴 것이고 아직 독서를 시작하지 않은 이라면 “인생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책을 만나보라는 따뜻한 권유를 듣게 될 것이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책린이라면 입문서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