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조져진 세대의 생존보고서

<뚝배기를 닦아 뿌링클을 사다> / 이용규 저

by 짱고아빠


'세상에 뚝배기를 닦아서 뿌링클을 산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자고로 뚝배기를 닦는 일을 한다면,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 알뜰살뜰 모아서 저축을 하던, 차를 사던(?) 집을 사던(?!) 지 해야지,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뿌링클이나 사 먹는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가'라는 제목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에 대한 내 안의 꼰대성을 발견하고 풋 웃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꼰대는 꼰대고, 늙은 건 늙은 거다.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는 한 영원한 청년이라고 누가 그랬나. 몇 십 년을 묵혀온 경험이라는 선험적 지식은 무시할 만한 게 못된다. 결국 인정할 건 인정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 꼰대에서 벗어날 생각보다 나는 어떤 꼰대로 늙어갈 것인가가 옳은 질문이다.


조져진 세대의 두 번째 페르소나라는 소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 불리며 청년의 시기를 거친 나는 어느덧 시니어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를 MZ라 부른다. 이름은 발랄해졌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청년취업률 같은 지표들은 매년 최악의 수치를 갱신하는데도 세상은 그들을 소비의 중심으로만 여겼다. 듣기만 해도 암울했던 'n포 세대'에서 꼭 무언가 있는 것만 같은 MZ로 청년세대를 갑자기 바꿔 부르기로 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우리는 지금 이 조져진 세대를 MZ라고 부른다. 이 책은 그 MZ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세대를 살아내는 20대 페르소나인 저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박명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을 사랑한다.(세상에 뉴캐슬이라니! 한참을 큭큭대며 웃었다. 마이클 오웬의 그 뉴캐슬이라니... 아련) '굿윌헌팅'에 빠져 로빈 윌리엄스의 팬이 되었으며, 페퍼톤즈에 심취한 홍대병 환자이기도 하다. 2015년 즈음에 대학에 진학했다니 나보다 10년 정도 터울을 둔 후배일진대 같은 병에 걸렸던 홍대병 환자의 한 사람으로 꼭 한번 술 사주고 싶은 후배를 만났다.


책의 1부는 이 세대에 대한 칼럼이자 보고서다. 좀 딱딱하게 읽히기도 하지만 그 세대의 정중앙에 들어있는 이가 고발하는 소위 MZ의 현주소이자 보고서다. 아프게 읽으면 좋겠다. 2부는 저자가 고백하는 본인 세대의 르포르타주이자 에세이다. '언더독 콤플렉스'라 이름 붙인 이 내용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은 족히 될 정도로 잘 쓴 글이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글타래다.


대학에 합격하면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던 청춘, 그 어려운 입시의 문을 뚫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삶의 문제들, 돈, 꿈 그리고 사랑. 이 시대의 20대로 살아가는 청춘이 어떻게 그 순간을 지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시기를 살아내며 느끼는 순간과 감정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딱히 화목한 가정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내게 가족이란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로 연결된 집단이라는 이야기는 꽤 아프게 닿았다. 그랬다. 교과서에서는 아니 지금도 TV에서는 가족으로 연결된 끈끈함 같은 걸 수도 없이 이야기하지만 그런 걸 기대할 수도, 아니 누군가가 너의 가족은 왜 그렇지 않냐고 하는 물음에 대거리해야 하는 이들도 이 땅에는 존재한다.


알바 중 학원 부원장과의 에피소드에서 듣기보다 들은 뒤에 내놓을 대답이 더 중요한 대화가 있다는 말은 마음을 후벼팠다. 그랬다. 대화라기 보다 사회생활 면접 같은 긴장이 일상이었던 사회 초년생 시절, 상대방이 만족할 정답을 찾기 위해 모든 상황에서 머리 굴리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정답을 맞혔을 때의 쾌감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뭐하고 사나'란 현타에 어질했던 기억도.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다고 누가 그럤나. 추억은 개뿔 아마 죽을 때까지 컴플렉스로 따라다닐 기억들이 꽤 책을 읽는 내도록 꽤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다.


책을 읽으면서 적어놓고 싶은 표현이 꽤 많았다. 즉흥적인 글인지 오래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나 글이 많이 좋았다. 가볍지 않게 정독했고 돈이 없지 가오는 있던 내 어린 날이 떠올라 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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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를 닦아 뿌링클을 사다 / 이용규 저 / 좁쌀한알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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